요즘 들어 조직이란 무엇인가, 정말 바람직한 조직 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이러한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아마도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중 내가 생각하는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기 때문인 것 같다. <고장 난 회사들>은 사실 회사 선배의 추천으로 선택한 책이었다. 주제목을 보고 단순히 조직을 분석한 책이겠거니 생각했지만 또 부제 “주가가 알려주지 않는 문제적 조직의 시그널”이나 “이 회사, 믿고 투자해도 괜찮은 걸까?”라는 표지 멘트를 보면 마치 주식 투자에 도움을 주는 책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본 책은 세계적 컨설턴트인 작가 마틴 린드스트롬이 조직을 진단하는 체크 리스트를 각종 사례를 들어 분석한 책이다.
본 책의 작가 마틴 린드스트롬은 세계적인 브랜딩/마케팅 전문가이자 경영 컨설턴트다. 직업적 특수성으로 인해 그에게는 세계 1위 해운업체 머스크 등 글로벌 기업들을 컨설팅할 기회가 주어졌고, 이에 따라 기업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분석했던 것이다. 분석 결과, 놀랍게도 기업에서는 정말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곤 했고, 이는 단연 한 두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 사이에 만연한 문제라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책에서 소개된 기업의 고장 난 사례들로는 내부 갈등의 집합체인 복잡한 리모컨, 1MB 이상의 파일 전송을 금지하는 보안 규정, 고객 감소의 원인을 실내조명등에서 찾는 모습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례들은 나에게도 전혀 낯선 것이 아니었다. 복잡한 리모컨은 마치 새로운 정보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온갖 부서에서 말했던 요구사항을 때려 넣은, 그러나 정작 그것을 만든 사람이 아니면 결코 사용법을 익히기 녹록지 않은 우리 전산 시스템을 떠올리게 했고, 1MB 이상의 파일 전송을 금지하는 보안 규정은 망분리라는 명목으로 전송 용량 제한뿐 아니라 매번 복잡한 결재를 거쳐야만 하는 파일 전송 시스템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기시감은 한편으로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면서도 ‘아, 역시 우리 회사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는 몹쓸 안도감을 느끼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듯 대부분의 조직이 보유하고 있는 고장 난 사례들은 우리가 기업을 분석할 때 보는 주가나 분기보고서와 같은 수치화된 자료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에 작가 린드스트롬은 그럴 듯한 수치에 가려진 이면을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기업을 고장 나게 만드는 요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정적인 고객경험, 둘째 사내정치, 셋째, 기술, 넷째 회의, 다섯째 넘쳐나는 규칙과 정책, 여섯째 규칙에 대한 집착.
하나 같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요인들이고 내가 속한 조직에서도 쉽게 발견될 수 있는 요인들이다. 이 요인들이 축적되어 앞에서 말했던 고장 난 사례들이 내 눈 앞에서도 펼쳐졌던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MZ 세대가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이전에는 쉬이 받아들여졌던 조직의 곪은 문제들이 하나 둘씩 표면에 드러나고 있다.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새로운 세대가 마냥 나약하고 불만이 많아 보일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들이 몇 십 년간 몸 담았던 조직들이 앞에서 열거한 기업을 고장 나게 하는 요인을 전부 가지고 있고, 그것이 새로 유입된 사람들의 눈에 확연히 드러나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게임판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게임판과 게임의 룰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깨닫기 힘들지만 이제 막 게임판에 들어 온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룰이 너무도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물론 이를 단순히 세대 갈등으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적어도 기성세대들이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익숙하다고 해서 전부 옳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이 잘못되었다 말한다면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자신들이 그동안 너무나 타성에 젖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성찰을 해봤으면 한다는 걸. 물론, 이는 역시 고장 난 조직에 또 다시 익숙해져 갈 새로운 세대인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말일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