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철학책을 집어들먼 하는 두가지 생각이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자가 평소에는 알수 없는 인사이트나 깨달음이 반드시 내재되어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만 알아채지 못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과 제발 쉽게 쓰여졌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이 동시에 든다.
일단, 이 책도 나름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것을 확인하고 집어 들었다. 어렵다면 여러 독자의 선택을 받기는 어려웠을테니 말이다. 14명의 철학자의 발자취를 따라 기차 여행을 하는 작가의 컨셉부터 작가가 들려주는 철학과 철학자의 이야기… 재미난 이야기를 듣는 그런 기분으로 읽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으스대고 뻐기며 걷지만, 혼자 있을 때는 그러지 않는다. 으스대며 걷는 것은 사회적 제스처다. 가장 느린 이동 형태인 걷기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우리는 아마 한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을 오래전에 잃어버린 낙원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걸을 수는 있다.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 걸어서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수 있다. 산들바람이 부는 상쾌한 가을날 오후, 특별한 목적지 없이 혼자 걸을 수 있다.
우리는 잊기 위해 걷는다. 짜증내는 상사, 배우자와의 말다툼, 아직 지불하지 않은 청구서 무더기, 타이어 압력이 낮거나 차가 불타고 있음을 알려주느라 계속 깜빡이는 스바루의 경고등을 잊기 위해 걷는다. 우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산책자였던 윌리엄 위즈워스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
몰입은 “그 자체를 계속 추구하게 될 정도로 매우 보람찬 상태”라고 칙센트미하이는 말했다.
깊이 몰입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한 것이 아니다. 그 순간에는 몰입할 자신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음악가는 없고 오로지 음악만이 존재한다. 무용수는 없고, 오로지 무용만 존재한다. 보트 타기에 열심인 한 사람은 몰입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 게임에서 중요치 않은 것은 전부 제쳐놓고, 오로지 바다 위 보트의 움직임, 보트 주변 바다의 움직임만이 보입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 보트로 대서양을 향해가거나 에베레스트산을 오를 필요는 없다.
그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뿐이다.
어렵다. 따분하다고 뇌리에 박힌 철학이 실제로는 매우 흥미롭고 해약과 유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궁극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고, 각각 사람들의 행동에 대한 가다양한 삶의 방향성을 닮고 있는 학문이라는것… 철학하면 학문 느낌보다는 뭔가 좀더 형이상학 적인 무언가 라는 느낌이 드는데… 여타 다른 학문과 다를 바 없다. 단지 내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는 확실성이 아닌 정반대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선택할수 있다. 일단 그렇게 하면, 삶(외부인의 관점에서는 전과 똑같은 삶)은 꽤나 다르게 느껴진다. 불활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낮에 회사에서 있었던 심란한 일은 하루의 끝에 이를 갈며 와인 한 잔을 더 마셔야 할 일이 아닌 축하할 일이 된다. 불확실성에서 즐거움을 찾으면 질병마저도, 신체적 고통이 계속될지라도,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미묘하지만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세상이 전과 달라 보인다. 니체 또한 이러한 방향 전환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가능성을 탐험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우리는 종종 자신의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혼동한다. 스토아 철학은 헷갈릴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간단하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몸조차도 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빌릴 뿐, 절대로 소유하지 않는다. 해방감이 느껴진다. 잃어버릴 것이 없다면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 할 것도 없다.
소로처럼 천천히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각은 가장 속도가 빠른 감각, 예를 들어 미각보다 훨씬 빠른 감각이다. ‘음미하다’와 비슷한 시각 관련 단어는 없다(어떤 대상에 시선이 ‘머무른다’ 라고 말할수는 있지만 이 표현에는 ‘음미한다’ 같은 감각적인 느낌은 없다).
나는 보는데 게으른 사람이다. 내 시선의 대상이 모든 일을 다 해주길 바란다. 경치, 한번 나를 황홀하게 해봐, 아름다워지라고 ! 그 대상이, 예를 들면 알프스 산맥이나 모네의 그림이 내 말도 안되는 기대에 못미치면 나는 내가 아닌 그 대상을 탓한다. 소로는 다르게 생각했다. 아름다움에 익숙한 사람은 쓰레기장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내지만, “흡잡기 선수는 낙원에서도 흠을 찾아낸다”
적어도 흡잡기 선수는 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딱딱하고 거리두기만 해오던 철학과 친숙해지기 좋은 그런 책이다.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