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과 글을 잘 활용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유시민 현 작가는 그 대표적인 사람 중의 하나이다. 유시민 작가의 많은 책들은 과거 봤던 책에서의 발췌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청춘의 독서, 나의 한국현대사 등등 그런 작품의 시작은 바로 이 거꾸로 읽는 세계사이다.(물론 이번 작품은 거의 새로 쓰여졌다고 한다) 유 작가는 이 책의 인세로 독일로 유학도 가는 등의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꽤 오랫동안 글로 돈을 벌어서 살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시민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정치가로 인식하겠지만.
이 책은 20세기 세계사의 열한가지 큰 사건을 다루고 있는 "보고서"라고 쓰여있다. 이는 유시민 작가(58년 개띠)가 한창 사회적으로 성숙하고 세계관이 갖춰질 떄 영향을 미친 일들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세대라면, 좀더 최근의 역사를 썻다면 더 흥미있고, 재미있게 읽었겠지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20세기의 사건들(1차세계대전을 시작으로)도 매우 흥미롭다. 대학원에서 배웠던 국제관계 international relation 에도 많은 상관이 있다. 유작가는 이시기에 일련의 사건들로 형성된 삶의 방식은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쉽지 않았다고 기술한다.
유시민작가는 역사를 안다고 해서 무슨 쓸모가 있겠냐만 그저 아는 것 자체가 좋아서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물론 본인이 직간접적으로 겪은 한국사에 대한 책도 낸 바 있다. 심오한 역사철학이나 역사이론은 없으며, 역사적 사실 사실 사이의 관계에 대한 정보들이 전부이다. 1988에 초판을 발매하였으며, 1995년에 개정판을 낸 구판이지만 이번 개정판은 한문장도 그대로 두지 않고 다시쓰고 덧붙여 썼다고 한다. 해석을 더러 바꾸었으며, 각주를 꼼꼼하게 달았다. 1988년에 구로공단의 벌집 자취방에서 볼펜으로 원고지에 쓴 초판은 당시의 작가의 상황과 시대상황에 따라 거칠었고 시선은 공격적이었다고 한다. 논증 없는 주장도 적잖았다. 개정판에서는 소련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 붕괴 독일 통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에 대한 내용을 보충하였다(20세기 사건이기 때문이겠지). 비문이나 전개가 매끄럽지 않은 글들도 바로잡았다. 작가는 이를 열정은 넘치지만 공부는 모자란, 열심히 배우지만 사유의 폭은 좁은, 의욕이 지나쳐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공감하기보다는 주장하는데 급급한 현학적 문장을 지성의 표현으로 여기는 글쓰기의 기초가 약한 젊은이가 보였다고 한다.(이는 자기미화를 상당히 경계하는 작가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 절판했지만, 시장의 수요가 꾸준히 있어 다시 썼다고 한다.
유 작가는 그당시와 달라진 "나의 변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역사의 발전을 예전처럼 확신하지 않는다. 사회적 불의와 불평등을 집단적 의지와 실천으로 극볼할 수 있다고 믿지만 한번의 사회혁명으로 모든 것을 바꿀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그동안의 정치개혁 실패가 이유가 이러한 사유의 원천인 듯 하다) 인간 이성의 힘을 신뢰하지만 생물학적 본능의 한계로 호모사피엔스가 스스로 절멸할 수 있다고도 본다. 반항하는 청년이 나이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학자들 덕분에 인간의 물리적 실체와 생물학적 본성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되어 그러는지도 모른다고 한다. (유 작가는 그동안 과학에 상당히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뇌 과학에 상당한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의미있다고 생각했던 구절은 다음과 같다. 공산주의에 반대한다고 반공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을 우방이라고 여긴다고 해서 친미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공산주의에 반대하지만 반공주의자는 아니다. 한미 우호관계를 중시하지만 친미주의자가 아니다. 어떤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을 놓고 사람마다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때로는 판단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그런 것을 신념체계로 만들어 세상을 보는 잣대로 삼을 필요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언론은 여전히 이념의 색안경을 걸치고 세상사를 보도한다. 나는 교과서와 언론이 소홀하게 취급하는 몇몇 사건을 비중있게 다뤘고 어떤 사건은 다른 시각으로 서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