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대학시절을 보낸 586세대에게 이 소설은 민주화 투쟁의 현장속으로 여행하게 한다. 수업은 휴강이 대부분이고 거리에는 최루탄 흰가루가 날리고 여기저기서 집회를 하는 모습이 일상이었다. 나도 1986년 10월말 건대 집회현장에서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7일간 억류된 적이 있었다. 이책에서도 이 사건이 언급되어 그 시절의 기억이 났고 기분이 묘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하고픈 문장을 기록해 본다.
세상은 선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곳이다. 대책없는 선함은 어리석음과 다를 바 없다. 경우에 따라선 기소를 당하거나 감옥살이를 면할 수 없었다. 착하기 때문에 그들은 나쁜 놈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기준의 잘못이 아니었다. 잘못은 어딘가 망가지거나 삐뚤어진 세상에 있기 때문이다. 종종 기준은 자신이 잘못된 세상에 부역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어쩔수 없었다. 비뚤어졌건 망가졌건 그가 숙주로 삼아 살아가야 할 곳은 그 세상밖에 없었으니까.
위대한 희곡이라면 누구에 의해서든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재해석되고 고쳐 써질 수 있어야 한다.
지식은 시험지 위에 쓰는 정답이 아니라 거리에 찍힌 발자국에서 얻는 것이다.
사랑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마침내 파국에 이르고 마는 인생을 닮은 단거리 경주 같다.
연극이 뭐라고 생각해? 그건 잊힌 것들에 대한 기억이야. 우리가 한때 기억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무엇, 우리는 그걸 연극으로 되살리는 거야. 우리가 선하다는 것, 그러면서도 동시에 악하다는 것, 어설픈 행운 같은 걸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 끝없이 고통당할 거라는 것,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리란 것, 그래서 우리가 숭고하면서도 비천하다는 것 말이야.
연극은 끊임없이 배를 채워줘야만 달리는 먹성 좋은 말이었다.
10월에는 건국대학교에서 전두환 정권 퇴진 요구시위를 벌이고 해산하려던 학생 2천여 명 중 1500여 명이 좌경 용공분자로 연행되었고 1288명이 구속되었다.
학습을 통해 습득한 논리나 신념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형성된 저항의 언어들. 그 격렬한 말들의 뿌리는 바로 분노였다.
어떤 일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가 그 일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우리가 그 일을 상상하지 못하거나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극히 미약한 정보로 핵심에 도달해야 하는 그의 업무는 페널티킥을 막아야 하는 골키퍼처럼 원천적으로 불공정했다. 행동이 의지의 반영이고 말이 생각의 표출이라면 중요한 것은 행동이 아닌 의도이며 말이 아닌 의미가 아니겠는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현상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 없는 사물의 즉흥적 표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현상이 바람에 날아가는 모래에 불과하다면, 살아남는 것은 모래가 날아간 돌판에 새겨진 텍스트다.
"엘렉트라의 비밀"은 고전극 구성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 질문을 품고 있다. 간결한 양식과 심오한 주제가 대립했고, 단순한 형식 속에 풍부한 세부 장치들이 배치되었다.
작전이 끝나면 모든 순간이 지닌 의미와 숨어 있는 암시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이 위험하고 어떤 순간이 중요했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 낱낱이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심문은 흥미로운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대본도 동선도 없는 즉흥극이지만 그 대사는 신랄하고 그 감정은 격렬할 것이며, 그 진실은 어떤 연극의 주제보다 선명할 것이다. 그는 배우인 동시에 열성적인 관객으로서 미묘하게 변하는 상대를 관찰하고 그의 대사를 곱씹으며 그 내면을 들여다 볼 것이다.
선과 악에 대한 흔한 오해는 그것이 눈에 보이는 실체로 존재할 거라는 생각이다. 세상이 선과 악이라는 두 영역으로 나뉘어 태초부터 영원까지 대결한다는 가정, 최후의 아마겟돈에서 선이 승리하고 악이 소멸되리라는 믿음.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가정과 믿음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대상을 믿기 때문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어야 믿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계는 망상 위에 서 있었고 삶은 진저리 나는 실수나 오해의 집적에 불과했다. 우리의 존재를 만드는 것이 우리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타인의 눈이라고 생각한다.
나무는 겨울이 오면 잎들을 떨어뜨린다. 증산작용을 계속하면 에너지 소모를 견딜 수가 없고 온도를 빼앗겨 결국 얼어 죽는다. 아프리카 물소 떼는 일주일에 한 마리씩 주변의 사자 떼에 잡혀 먹지만 결코 늪을 떠나지 않는다. 물을 먹을 수 있는데다 사자 떼 때문에 다른 맹수들이 얼씬거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정한 희생을 감수하고 무리를 지키는 적대적 공생이다.
우리 인간세상과 얼마나 같은지 놀라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