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쉬다'는 저자가 여행자로서 삶을 살아오면서 국내에서 걸었던 길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를 소망하며 꼭 한 번 다시 걷고 싶은 우리 길 20곳을 엄선하여 소개하고 있다. '벗에게 가는 길(강진,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과 혜장 스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살다 보면 평생 벗하고 싶은 사람 하나 있다. 봉건국가의 몰락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이 교차하는 조선 말기에 만난 다산 정약용과 혜장, 두 사람은 나이와 신분, 사상과 종교가 달랐지만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은 우정을 나누었다. 다산 초당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하던 강진 만덕산 중턱에 위치한 거처로 이곳에서 15년을 지내며 실학을 꽃피웠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1년 무염선사가 창건했으며, 조선 후기 8대사를 배출하며 선승도량으로 이름을 날렸다. 다산과 따뜻한 우정을 나눈 혜장선사도 8대사 가운데 한 분이다. '꽃절을 찾아 고개를 넘다(순천, 조계산 굴목이재)'는 선암사와 송광사 사이를 있는 고갯길이다. 선암사는 차의 전통을 소중하게 지키고 있는 절 가운데 하나다. 선암사에 차밭이 조성된 것은 신라 말 풍수지리 사상의 기틀을 세운 도선국사가 처음 씨를 뿌렸다고 한다. 또한 선암사의 편백은 수령 60~70년 된 것들로 한 아름씩 되는 나무들이 곧장 수직으로 솟구친 모습이 장관이다. 송광사는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삼보사찰의 하나로 불리는 절이다. 송광사로 드는 다리이자 정자인 우화각은 걸터앉아 다리쉼하기 좋다. '천상의 화원으로 가는 원시의 숲(인제, 점봉산 곰배령)'은 활엽수가 이룬 극상의 원시림이라는 찬사를 받는 곳이다. 산림청은 이곳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하여,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야만 강선골과 곰배령을 찾아갈 수 있다. 곰배령을 향해 오르면 초원은 점점 넓어져 축구장만큼 커지면서 여름이 깊어갈수록 들꽃이 만발하는 곳이다. '총각들 꽃 꺾기 내기하던 고개(정선, 운탄고도 화절령)'은 옛날 석탄을 실어나르던 운탄고도와 몇 개의 고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꽃꺾이재(화절령)이다. 그 옛날 총각들이 꽃 꺾기 내기를 했다는 전설도, 탄광으로 흥청거리던 기억도 다 옛일이 되어버렸다. 화절령이 새롭게 등장한 것은 십여년 전, 하이원리조트가 백운산 일대의 운탄고도를 산책로로 조성하면서다. 화절령 고갯마루에서 도롱이못과 아롱이못이 발견되었는데, 1급수에서만 사는 도룡뇽이 서식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한때 번화한 탄광촌이 있던 화절령에는 그 흔적을 찾을만한 게 하나도 없다. 오직 고개 한편에 자리한 도롱이못만이 그 시절의 증인으로 남아 있다. 도롱이못은 1970년대 석탄을 캐던 갱도가 지반 침하로 주저앉으면서 만들어진 연못이다. '끝없는 초원 펼쳐진 바람의 언덕(평창, 선자령)'은 대관령 지나 북으로 향하는 백두대간에 솟은 봉우리다. 바람의 언덕이라 불리는 선자령은 알프스처럼 펼쳐진 산정의 초원에서 바람과 마주하는 곳이다. 여기에 수십기의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 또한 선자령은 대표적인 눈꽃 트레킹 명소다. 그러나 선자령 트레킹의 진정한 묘미는 가을이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하늘만큼 넓은 초원이 펼쳐진 풍경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시대의 선승 만공, 그가 걸어간 만행의 길(예산, 덕숭산)'은 저서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길이다. 만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던 스님 가운데 만공이 있다. 경허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만공은 근대 최고의 선승으로 평가받는다. 만공을 만나려면 수덕사부터 들러야 한다. 수덕사에서 만공이 조실로 있던 정혜사까지 산길을 따라간다. 모두 1,080계단으로 된 길을 따라가다보면 만공의 사리탑과 미륵불, 견성암 등의 유적을 차례대로 만난다. 수덕사는 조계종 5대 총림 가운데 하아인 덕숭총림을 형성, 세력을 단단히 펼치는 절이다. 수덕사 입구에는 대웅전만큼이나 정감이 가는 초가집이 있다. 수덕여관이다. 100여년 가까지 여관으로 이용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수덕여관은 빈집으로 버려지다가 이응로 화백의 사적지로 복원되었다. 저서에서 소개된 20개의 길 가운데 대표적인 몇 곳을 추려서 소개하였지만, 모두가 엄선된 길이니 만큼, 안가본 곳은 국내 여행지로 한번 가볼만 하고, 여행전 길라잡이로 또 사전지식으로 일독하고 가본다면 바쁜 삶을 잠시 내려놓고 휴식과 위안을 얻는 여행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