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영월부터 남양주 두물머리까지 흐르는 남한강을 따라 펼쳐진 강변의 풍광과 고을마다 남은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영월, 단양, 충주, 원주, 여주 일대를 망라하고 있다.
영월은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단종의 장릉과 한국적 강마을의 평화로움을 보여주는 주천강변을 이곳의 명소로 저자는 꼽고 있다. 제천과 단양 일대는 '단양팔경'으로 유명한 수려한 경관이 일품이고, 조선시대 선비들의 여로로 그들의 이야기와 자취가 곳곳에 남겨진 장소이며, 영춘향교와 온달산성에 대해서는 저자가 비장의 답사처로 칭송할 만큼 옛 고을과 옛 산성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곳으로 특별한 추천의 말도 함께 덧붙이고 있다.
오래 전 문화유산답사기 1권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에 비해 책도 두꺼워지고 미술사적 관점에서 문화재를 감상하는 미학적 비평 중심에서, 역사와 이야기를 한데 어우르는 인문학적 성격이 더욱 강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1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구수하면서도 섬세한 문장력과 함께 한 폭의 산수화를 부분부분 차례로 보며 감상하듯 문화 유산을 보고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는 점이다. 박물관에 남아있는 유물이 아니라 우리 역사와 자연 속에서 살사 숨쉬는 '유산'으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인상적인 파트별로 나누어 적어보고자 한다.
1. 단종애사와 자규시
청령포는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다. 육지 속에 있는 섬인데, 나룻배로 건너야 갈 수 있어 그 남다른 운치를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유배왔을 때 가장 처음 머문 곳이기도 한 청령포, 이곳에는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 권력을 제대로 다루어보지도 못하고 귀양을 왔던 단종의 애처로움과 무력감이 쓸쓸하게 묻어있을 것만 같다. 그나마 숙부인 세조의 배려로 노산군이란 신분을 가질 수 있었지만, 계속되는 단종 복위 움직임 속에 단종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귀양 생활이 처음에는 그런대로 쓸쓸히 지낼만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권력은 어린 단종을 그렇게라도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돈 모양이다. 힘든 생사의 갈림길에서 단종이 읊은 자규시가 책에 소개되어 있는데, 처연하고 절제된 맛이 느껴졌다. 가장 인상적인 마지막 시구, "어이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 귀만 밝게 했는가"는 읽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2. 퇴계와 두향의 이야기
퇴계가 단양군수로 부임해왔을 때 관기 두향과 사랑에 빠졌다. 9개월 뒤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고, 지역을 떠나지 못하는 관기의 처지 때문에 두 사람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그때 두향은 시를 남기고, 퇴계에게 수석 두 개와 매화 화분 한 분을 주었다고 전해진다. 그 뒤 두향은 강선대에 움막을 짓고 여생을 퇴계를 기억하며 살았다고 전해지고, 서로 서신을 주고 받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을 떠날 때에도 강선대 아래 묻어달라고 한다. 이 이야기는 퇴계의 노년을 이야기할 때 꼭 등장하는데, 강선대에 묻힌 두향의 묘는 충주댐을 건설할 때 이장되었다고 한다. 신분제 사회, 기녀를 한낱 소유의 대상으로 생각했을 법한 시대에서 대유와 기녀 간의 사랑이 오래 지속되고 지금도 기록과 인구에 회자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순수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3. 영춘 온달산성
산성은 산사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어우러진 맛이 있다. 온달산성을 가보지 못했지만 이 책을 읽고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으로 마음먹었다. 책을 통해 읽은 온달산성은 단양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겹겹이 솟은 봉우리 너머 소백산이 보이고, 그림같은 단양의 경치가 멋스럽게 펼쳐지는 곳이라고 한다. 삼국시대에는 한강 일대를 차지하기 위한 삼국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고, "바보 온달" 이야기가 겹쳐져 온달산성을 더욱 매력적인 유산으로 만들고 있다. 자연 안에 자연처럼 앉은 산성의 생김새는 물론, 그와 관련된 고구려 온달장군의 이야기는 자연, 역사, 그리고 그 당시 신분제 사회를 뛰어넘어 진보적이고 평민적이며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온달과 평강공주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