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여름, 새로운 부서에 전입하게 되면서 단 한 번도 맡게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통계조사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그동안 내 삶 속에서 접한 통계라 하면 고등학교 때 죽어라 공부한 확률과 통계, 대학교 때 수학 겉핥기식으로 배웠던 통계학, 어쩌다보니 어깨 너머로 배운 통계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통계는 다루기 까다롭지만 이는 반대로 말해 통계를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일반인들은 절대 얻을 수 없는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처럼 데이터가 중심이 되는 시대에는 데이터에 기반해 팩트를 파악하고 분석하는 역량이 그만큼 중요해진 것 같다. 현재 내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와 꽤나 깊은 관련성이 있고, 앞으로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이 책을 선택하게 한 힘이었다.
흔히 사람들은 정확한 통계수치에 기반하지 않은 사실 기반의 명목 및 서열 측정을 통해 통계를 일반화하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GDP가 낮은 저개발 국가 사람들은 행복지수가 낮을 것이다’와 같은 잘못된 선입견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본 책의 저자인 바츨라프 스밀은 통계학의 대가로 각종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50여 년간 광범위한 분야의 연구를 선도한 환경과학자이자 경제사학자이며, 빌 게이츠가 가장 신뢰하는 사상가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저자는 책의 초입에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실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 썼다. 우리 세계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려면 숫자를 적절한 맥락에 대입해야 한다. 내 목표는 숫자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숫자에 어떤 진실이 담겨 있는지 찾아내는 것이다.”
이를 다시 말해보면 이렇게 해석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를 해석하는 사람은 얼마든지 대중의 오독을 의도해 오해와 편견을 심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오류를 피하고 데이터에서 진실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인가. 단순한 수학적 계산을 뛰어 넘어 숫자를 적절한 맥락에 대입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사망률과 저축 수준, 에너지 사용량, 식습관 등의 수많은 통계 및 데이터는 역사, 사회, 국제적 맥락에서 비교 분석해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책의 초입부터 강력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숫자로 장난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데이터를 보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해석하고 그럴 듯한 논리를 만들어 상대를 설득하려고 한다. 이 때 저자가 말한 통찰력을 지니지 않은 사람은 그럴 듯한 논리에 결국 넘어가고 말 것이다. 누구보다 냉철하게 주어진 숫자를 분석하고 판단해야 하는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나의 입장으로서는 정말 이 책을 제대로 읽고 데이터를 보는 눈을 키워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책은 크게 7개의 주제와 71개의 소재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주제가 순차적으로 이어진다거나 하는 느낌은 따로 아니어서 흥미로운 주제를 골라 읽어도 문제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7개의 주제는 1. 사람, 2. 국가, 3. 기계/설계/장치, 4. 연료와 전기, 5. 운송과 교통, 6. 식량, 7. 환경이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백신 접종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의료적 관점이 아닌 ‘편익-비용 비율’이라는 경제적 관점으로 접근하는데, 2016년 미국 의료 전문가들은 100곳의 저소득 및 중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 보급에 따른 투자 수익을 계산했는데, 그 결과 백신 접종에 1달러를 투자할 때마다 16달러를 절약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특히 경제적 편익을 폭넓게 해석하는 편익-비용 비율이 44배에 달했다고 하니, 전염병을 예방하는데 백신 접종만큼 확실하고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은 무리가 아닌 듯 보였다. 요즘 코로나19 백신접종으로 각종 의견이 충돌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안전성에 대한 바이오적 관점과는 별개로 데이터만을 놓고 볼 때는 국가에서 백신 접종을 장려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본 책을 읽고 나서 세상을 보는 통찰력이 깊어진 느낌이 들었다. 저자가 말한 숫자를 적절한 맥락에 대입하는 훈련을 꾸준히 함으로써 숫자 이면에 가려진 진실을 보는 눈이 더욱 커지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