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차 딸, 26년 차 아내이자 엄마, 며느라, 그리고 20여 년 차 대학교수로 살고있는 저자 정연희의 에세이집이다.
"너 이혼 당하려고 그러니? 애 둘을 두고 유학 간다니? 애들도 건강하게 잘 낳고, 네 남편도 이제야 대학병원 교수가 됐는데 그 집에서 이제 뭐가 아쉽냐? 왜 그러니? 애들 돌보며 하고 싶은 공부나 하고, 강의하면 되는데."
- <이혼 당하려고 그러니? 애 둘을 두고 유학을 간다고?>중에서...
작가의 부모님 이야기는 대부분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을 거다. 누구라도 그런 말을 했겠지. 우리 사회에서 애 둘을 낳은 여자가 혼자 1년이나 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말에 반기는 분위기는 아니니까.
그때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 엄마, 애는 내가 낳았으니 세상이 바뀌고 내가 죽었다 살아나도 내 자식인 건 변함없고, 남편 마음이 바뀌면 그릇이 그만한 것이고, 그렇게 쉽게 변할 마음이라면 지금 변하는게 낫지. 그 정도 자신감도 없이 어찌 살아? 1년만 가서 공부하고 싶어.
걱정 마세요 아버지! 저는 남편에게 허락받는 존재가 아니에요. 내 인생을 누가 허락하고 말고 할 게 뭐에요.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거죠. 이제 제가 존중받을 떄라 생각할 뿐이에요."
-<이혼당하려고 그러니? 애 둘을 두고 유한을 간다고?>중에서...
'자신감'작가가 말한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렸다. 부러움이었을 수도 있고, 그 자신감의 근원이 궁금해서 일 수도 있고.
이 책 속의 글들은 작가의 스물다섯의 딸이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고 선언한 뒤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이다.
'무엇이 우선일까?'
'무엇이 바탕이 되어야 할까?'
자라면서 충분희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갈 수 있지만, 환경도 스스로 바꿀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어진 '환경'을 무시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금수저 흙수저를 나누고 싶은게 아니라, 출발선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됐다.
먹고사는 문제가 1차적인 걱정이 되지 않을 때 다음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 내가 기억하는 나의 할머니,할아버지 그리고 엄마 아빠는 어땠을까?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고 그런 문제들로 싸우고 한건은 아니였다. 하지만 그 시대의 그들에게 아이의 교육이니 가족 여행보다는 내 집을 내 자산을 늘리는 일이 먼저였던것 같다.
나는 아이들에게 풍족하게 하고 싶은 거 다 해!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이들과 매년 고민없이 떠나고 싶을때 해외여행을 고민없이 떠나고 배우고 싶은걸 고민없이 배우게 해주고 싶다.
이런 고민은 실은 이 책을 읽는 내내 계속됐지만, 그럼에도 마음에 남는 문장들이 많았다.
여자로 살면서, 엄마로 살면서, 내 일을 가진 직장인으로 살면서 내가 느낀 불편함과 불안함에 대해. 나의 두 딸이 자라면서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에 대해. 그들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최소한 보호자인 '엄마'가 든든한 지원군까지는 못되더라도 마음으로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우리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작은 기쁨들을 찾으려고 애쓰고, 조금 더 성장하기 위해 애쓰고, 때론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쓴다. 나는 아이에게 주어질 ' 부모의 부족하지 않음'이 아이들의 미래를 최소한으로 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아이들에을 위해 내 모든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바람은, 적어도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바람과도 같다. 나의 아이들이 가정 안에서 누려야 할 것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다음, '네가 하고 시은 거 다 해'라는 말은,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라는 말이 전제되어야 할 거라고.
그 생각 끝에, 작가의 문장 하나가 다가왔다.
'너는 너를 최우선으로 두는, 너를 최고로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기 바란다. 더 큰 자유와 더 넓은 세상과 더 평등한 세상을 위해 엄마인 나를 할 수 있는 힘껏 외면하고 부정하렴. 그리고 너의 새로운 세상을 힘차게 살아가렴. - p134
그리고 몇 가지를 다짐한다.
아이가 살아가면서 내게 보여 줄 무수히 많은 행동들을 나의 눈으로만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겠다는 것.
내 기준에 맞춰 살아가도록 채근하지 않겠다는 것.
내가 해 줄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을 것.
그건 아이가 스스로 얻어내야 할 아이의 몫임을 알려 줄 것.
"이 세상엔 쉬운 탄생도, 힘들기만 한 탄생도, 누구보다 귀한 탄생도, 누구보다 슬픈 탄생도, 고통 없이 기쁘기만 한 탄생도 없으며, 그저 '자기 생의 소중한 탄생'만이 있음을 '탄생의 시간'속에서 알아가길 바란다.-p.29
"어느 인생에 고통과 슬픔과 어려움이 없겠는가. 어느 인생에 행복만 가득하겠는가. 고통과 슬픔이 있기에 행복이 빛나며. 행복이 있기에 고통을 참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나의 예쁜 딸이, 순하고 착하며 인내로는 누구도 따를 사람이 없는 나의 딸이 그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기를 바란다.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낼말이 없었으면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딸이 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겁내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오해 없이 말했으면 한다.-p.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