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그가 내는 책마다 모두 베스트셀러에 오를만큼 재미있는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매년 한 권 이상씩 써내며 비교적 다작작가에 속하지만 소설의 퀄리티가 일정한 편이고 어떤 소설들은 문학성이 뛰어난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비밀"은 예전에 출간된 소설에 새옷을 입혀 개정판으로 출간한 소설이다. 예전에 읽은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상당히 오래된 소설인 셈이다. 1998년에 출간된 소설이지만 설정부터 미스터리하면서 또 판타지를 소재로 쓰고 있어서 세월의 흐름이 많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한 집에서 전화를 쓰면서 무선전화기와 유선전화기를 공유한다. 이런 설정을 제한다면 위화감이 거의 없다. 조금씩 바뀌어 온 여성상에 대해서는 오래된 소설이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소설 '비밀'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주인공인 헤이스케의 아내 나오코와 딸 모나미는 아내의 친정으로 가는 길에 스키버스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큰 사고여서 신원파악도 늦었고 발견된 사람은 대부분 중태.. 그 사고를 집에서 혼자 뉴스로 접하게 된 헤이스케는 아내와 달 모두가 병원에서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에 절망한다. 위급한 상태에서 아내는 마지막으로 딸인 모나미오 손을 잡고 싶어하고, 이후 숨이 끊어졌다. 이제 헤이스케의 곁에 남은 건 딸 뿐이었다. 절망 속에서 단 하나의 구원. 아내를 잃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딸인 모나미만은 살아서 다행이라고, 비록 후유증으로 말문을 닫았으나 아내를 잃은 헤이스케는 그것만으도 감사했다. 드디어 모나미가 말문을 열어 자신이 딸인 모나미가 아니라 아내 나오코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사실 그동안 이런 설정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긴 했었다. 다른 건 작가가 히가시노 게이고이고, 오래된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아내가 딸의 몸을 쓴다는 것, 돌이켜보면 헤이스케에겐 딸인 모나미가 아니라 아내인 나오코가 살아있어서 다행일지도 모른다. 모나미의 몸으로 깨어난 나오ㅗ가 비론 어린아이같은 말투와 행동을 하진 않지만 남편인 헤이스케의 밥을 차려주고 성생활도 걱정해주는 등 진짜 아내처럼 굴기 때문이다. 막상 어린딸과 살아남게 됐다면 소설 속의 헤이스케는 그리 잘 살았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만큼 나오코의 영혼이 들어간 모나미를 몸이나마 진짜 딸로 생각한다면 할 수 없는 행동들이 많이 보인다. 나오코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기현상을 숨기고 어중간한 연극이라도 할수 있지 않았을까.
소설을 읽는 동안은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왔던 나오코의 성장기를 보기도 했고, 아내인 나오코는 모나미의 몸에서 활력있게 살아가는데 헤이스케는 홀로 늙어가 질투하고 괴로워하고 끝내는 나오코를 자신의 옆에 묶어두려하는 모습도 봤다. 부부의 성생활에 대한 고민 부분은 좀 거북한 면이 있긴 했으나, 충분히 그럴수도 있겠다싶게 이야기가 그려져서 두 사람의 갈등관계에 속이 답답해지면서도 나오코를 응원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나오코다 정말 어른스럽고 착한 캐릭터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이 주인공인 헤이스케의 시점으로 진행되기에,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고 괴로워하는 게 혹연히 보여지는 데 반해, 혼자 생각하고 고심하면서 행동하는 나오코의 모습은 헤이스케의 눈으로만 볼 수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주인공 부부 외에도 버스 사고를 낸 당사자 가족이나 합의금문제, 모나미의 몸에 들어간 나오코의 새로운 인생 계획 등 곳곳에 사회를 보는 냉철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쨌든 책의 제목인 '비밀'은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만 이해가 가능했다. 처음엔 모나미의 모멩 들어간 나오코의 영혼이 비밀인가 했지만 이중적인 의미가 있어서 그 반전때문에라도 기억에 남는 소설이 될 것 같다.
결말까지 다 읽으니 인물들이 좀 애달프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최선의 선택 혹은 희생인지 아니면 지독한 이기주의인지 혼란스럽기도 하고... 아무리 합리화 대고 그것이 온전한 삶일까...
인간의 감정, 마음이라는걸 아주 현실적이고 복잡미묘하게 잘 풀어낸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비밀'을 읽고 미리 알고 있었지만 가독성, 계연성, 스토리등이 기가막히는것 같다.
내가 헤이스케였다면, 나오코였다면 어땠을까를 계속 생각하게 해주면서 그 주인공드의 감정이 한번에 와닿는다. 정말 어려운 알다가도 모를 사람의 마음, 아프기도 하고 동시에 아름답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