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아몬드가 있다 당신에게도 있다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거나 가장 저주하는 누군가도 그것을 가졌다 아무도 그것을 느낄수는 없다 그저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을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 이야기는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끝이 비극일지 희극일지를 여기서 말할생각은 없다 첫째 결론을 말하는 순간 모든 이야기는 시시해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둘째 그렇게 해야 당신을 이이야기에 동행시킬 가능성이 조금은 커지기 때문이다 셋째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변명을 하자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알수 없는 일이다 가장 감명받았던 챕터는 미쳐 날뛰던 아내의 심장이 갑자기 멎었다 전기충격기도 없었고 코드블루를 외쳐봐야 뛰어올 사람도 없었다 박사는 아마추어처럼 가망없는 가슴에다 미친듯이 펌프질을 했다 한시간이나 지나서 구급차가 도착했을때 아내의 몸은 이미 차갑고 딱딱했다 그렇게 아내는 그를 영원히 떠났고 그뒤로 박사는 메스를 놓았다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러면서도 왜 그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는지만 돌이켰다 다시는 누군가의 살을 갈라내 그 안에서 뛰는 심장을 볼 자신이 없었다 둘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혼자였다 아내를 생각하면 고소한 빵 냄새가 떠올랐다 아내는 늘 그를 위해 직접 빵을 구웠고 그 맛은 무언가 그리운걸 떠올리게 했다 잊고있던 어린시절이나 설명하기 힘든 사소한 기억의 한 장면같은 것을. 바쁜아침에도 식탁엔 언제나 고소하고 따끈한 빵이 놓여있었다 박사는 빵만드는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가 아내를 위해 할수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논리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일이다 이미 빵을 먹을 아내가 사라진마당에 그게 무슨 의미일까 할멈의 표현대로라면 책방은 수천수만명의 작가가 산사람 죽은사람 구분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인구밀도 높은곳이다 그러나 책들은 조용하다 펼치기전까진 죽어있다가 펼치는 순간부터 이야기를 쏟아낸다 조곤조곤 딱내가원하는 만큼만 사랑을 얻기위해애쓰다 결국 죽음을 택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괴테나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떠올려봤다 사랑이 변했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집착하거나 학대를 가한다는 뉴스도 그리고 사랑한다는말 한마디에 모든것을 용서한이들의 이야기도. 그러니까 내가 이해하는 한 사랑이라는건 어떤 극한의 개념이었다 규정할수 없는 무언가를 간신히 단어안에 가둬놓은것 그런데 그 단어가 너무 자주 쓰이고 있었다 그저 기분이 좀 좋다거나 고맙다는 뜻으로 아무렇지 않게들 사랑을 입밖에 냈다 스무번째 봄이 왔다 학교를 졸업했고 남들이 말하는 어른이 되었다 버스 안에선 노곤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이 모두 꾸벅꾸벅 졸고 있다 차창밖으로 봄이 지나간다 봄봄봄이야 난 봄이야 하고 말하는 수많은 꽃들 그 꽃들을 지나쳐 나는 곤이를 보러간다 목적이나 할말은 없다 그냥 만나러 간다 모두가 괴물이라 말하던 내 착한 친구를 여기서부터는 아주 다른 얘기다 새롭고 알수없는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말했듯이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딱 나누는 것따윈 애초에 불가능한 건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맛을 지닌채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보기로했다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수 있는 딱그만큼을 책은 내가 갈수 없는곳으로 순식간에 나를 데려다주었다 만날수없는 사람의 고백을 들려주었고 관찰할수없는 자의 인생을 보게했다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들 겪어보지 못한 사건들이 비밀스럽게 꾹꾹 눌러 담겨있었다 그건 텔레비젼이나 영화와는 애초에 달랐다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속의 세계는 너무나 구체적이어서 더이상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영상속의 이야기는 오로지 찍혀있는대로 그려져 있는 그대로만 존재했다 그 세계에 내가 변화시킬수있는건 아무것도 없었다 책은 달랐다 책에는 빈공간이 많기 때문이다 단어사이도 비어있고 줄과 줄사이도 비어있다 나는 그안에 들어가 앉거나 걷거나 내 생각을 적을수도 있다 의미를 몰라도 상관없다 아무 페이지나 일단 반쯤 성공이다 나는 너를 사랑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