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추천으로 읽게 되었다. 간결한 문체와 적당히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을 옴니버스 구성으로 잘 엮었다. 8개의 짧은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인상깊었던 단편은 " 잘 살겠습니다" 소설의 첫 이야기 였다. 왜냐하면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였다.
데면데면한 동기가 결혼한다면서 갑자기 연락하고 친근하게 굴 때, 눈치 없는 회사 동료를 볼 때 속으로 내가 생각했던 말이 소설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온걸 보고 내심 놀랐다. 비슷한 경험이 있기에 가능할 법한 이야기를 책으로 읽을 때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생판 얼굴도 모르는 작가에게 친근감이 생기기도 하였다. 사회성은 살짝 서툴고 청첩 문화와 같은 자본 주의 교환 논리를 무시하는 회사 동기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비슷한 사람을 만났었고 속으로 얼마나 흉을 봤던가. 마지막에는 동기가 잘 살기를 바라는 주인공의 마음 또한 묘하게 예전의 나의 모습과 겹쳤었다. 이 소설은 이런 내용들과 같이 일하면서 겪을 법한 가볍고 무거운 이야기들을 매우 현실감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매우 정교하게 그려진다. 주인공의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소설에 푹 빠져서 읽게 되었다. 맞아 나도 그랬어 마음 속으로 맞장구 치면서 말이다. 일을 통해 얻거나 잃을 수 있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기쁨과 슬픔이라는 양가적인 감정을 통해 전달해낸다. 그래서 마치 직장에서 한 번씩 겪을법한 일을 친한 친구랑 맞은 편에 앉아서 수다 떨고 있는 기분도 들게 된다.
"백 한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을 읽으면 첫 출근할 때가 생각이 났다. 첫 출근 때 설랬던 마음, 출근하고 업무 익히느라 우왕좌왕 했던기억, 서툴지만 취업했다는 기쁨 등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들이 떠올랐다. 잘 해내고 싶지만 실수하는 주인공의 모습, 하루 일하고 벌써 부터 월급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택시를 타고 출근 하는 등장 인물의 모습을 보면 사람 사는거 다 별거 없구나 라는 생각마저도 든다. 나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월급날 직전까지 회사 때려칠까하다가 월급이 통장에 입금되는 순간 다시 잘해보자 하는 결심이 든다. "조금 비싼 듯 하지만 월급날이니까 괜찮아" 나 또한 주인공의 셈법처럼 이렇게 많이 자기 합리화를 시켰던 것 같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인들도 그렇게 살아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눈 뜨면 온갖 현학적인 생각들을 하다가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때야 부랴부랴 준비하는 것 등 등장인물의 모습도 현실의 내 모습도 별반 다를바가 없다.
일의 기쁨과 슬픔에 대한 양면성을 개개인의 보편적인 삶 속에 포착하면서 희망과 공감의 이야기를 각각의 단편 속에서 잘 담아내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모두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기쁨과 슬픔이 적절히 공존하기에 기쁜일이 있을 때 더욱 기뻐할 수 있고 슬픈 일이 있을 때 더욱 슬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기쁨이 없고 슬픔만 있는 일은 착취이며 슬픔이 없고 기쁨만 있는 일은 놀이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은 아마 이러한 일의 양면성에 대해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일이 주는 월급, 사랑, 기회, 설렘과 또 일이 주는 고단함, 고용관계, 분주함, 서글픔 등 다양한 모습들을 나타내고 싶은 건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각각의 단편들의 결말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완전한 해피 엔딩도 아니고 새드 엔딩도 아니라서 뭔가 애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 일의 양가적인 모습들이 있기에 어떤 뚜렷한 결말로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회사 생활에 대해서 사실적인 묘사가 가능한 것은 작가가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하다가 글을 쓰게 된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각각의 단편들이 직장 생활을 해본 사람만이 할 법한 감정과 느낌을 아주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각 단편이 주는 기분좋은 경쾌함은 소설을 다 읽었음에도 불쾌한 기분이 아니라 재미있게 읽기에 딱 좋은 느낌이 들었다. 뭔가 여러가지 해석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복잡하게 파헤쳐보는 것도 아니고 퇴근 후 친구들과 가볍게 수다 떠는 기분으로 책을 보면 제격일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