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유시민 작가의 책으로 다양한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특히 아래와 같이 2차세계 대전 관련된 내용이 인상깊었다.
히틀러는 나치당의 조직 원리를 적용해 국가를 재조직했다. 돌격대와 비밀경찰은 주요 정치인과 당원들을 납치,구금, 암살하는 방식으로
공산당과 사회민주당 조직을 파괴했다. 600만 지지자와 30만 당원을 자랑하던 공산당은 너무 많은 `명백한 반대자`를 만든 탓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다. 사회민주당은 관공서와 기업의 당원을 색출해 쫓아내고 노동조합 활동을 전면 금지하자 금세 힘이 빠졌다. 히틀러는 전권위임법 의결에 협력했던 중앙당을 포섭해 모든 정당을 해산하게 하고 나치당을 유일 정당으로 만들었으며 기업가,농민,상인의 이익단체도 다 없애버렸다. 또한 히틀러는 경제 분야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둠으로써 권위와 지지기반을 다졌다. 케인스의 이론에 따르면 나치의 경제정책은 미국의 뉴딜정책과 같은 것이었다. 루스벨트가 그런 것처럼 히틀러도 정부의 재정지출과 공공투자를 확대해 총수요를 북돋우고 고용을 창출했다. 세제 혜택을 비롯한 인센티브를 주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산업의 민간투자를 자극했다. 자동차, 아우토반, 기계장비, 도로, 주택건설 등 초기의 투자 내역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며 재원도 은행을 통해 국채를 판매하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조달했다.
그런데 히틀러는 민주주의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단을 동원했다. 도로 건설과 토지 개량, 대규모 병영과 비행장 건설등의 토목건설 사업에 중장비 대신 인력을 쓰게 했다. 군대와 경찰을 대폭 증원했고 친위대도 5만 명 넘게 채용했다. 감옥과 수용소를 지어 정치적 반대자를 가뒀다. 유대인의 상점을 폐쇄하고 직장에서 쫓아냈다. 미혼 여성에게 자금을 대출해주어 혼인을 장려하고 직장의 기혼 여성을 가정으로 돌려보냈다. 그렇게 해서 만든 모든 일자리는 게르만 남자에게 줬다. 출신성분을 따지지 않고 충성심과 능력을 기준으로 젊은이를 등용했다.
노동자와 빈곤층 남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1932년을 기준으로 할 때 1937년 재정지출은 224.4 국민소득은 163.3, 취업자 수는 146.0으로 증가했다. 600만이 넘던 실업자가 거의 다 없어졌다. 케인스의 이론 그대로였다. 정부의 `재정지출`이 `유효수요`를 늘렸고, `유효수요`가 증가하자 `국민소득`도 올라갔다. 히틀러는 독일에서 대공황의 어둠을 몰아냈다. 1933년 총선 때 나치당을 지지한 군부와 관료, 대자본가와 중산층, 농민층을 넘어서는 정치적 토대를 구축했다. 히틀러는 1935년부터 루스벨트와 다른 길을 갔다. 군수산업투자를 급속하게 늘려 재무장을 시작하고 1936년 3월 연합국이 비무장지대로 설정한 라인강 우안의 라인란트에 무장 병력을 투입하는 방식으로 베르사유조약을 파기했다. 1938년 3월에는 오스트리아를 합병해 도이치 민족주의와 게르만족의 세계 지배가 몽상이 아님을 선포했다. 유럽에 다시 전쟁의 공포가 드리운 1938년 10월 체코 국경 너머 수데텐 지역을 침공했고 1939년 3월에는 체코 전체와 리투아니아 일부를 점령했으며 9월에는 폴란드를 침략했다.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전쟁을 피하려고 참고 또 참았지만 더는 침묵할 수 없었다.
선사시대 게르만족이 행운의 상징으로 사용했다는 갈고리 십자가 `하켄크로이츠`는 죽음의 표식이 됐다. 독일군은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 1940년 4월부터 6월 사이에 덴마크, 노르웨이,프랑스,네덜란드,벨기에 등을 점령했다.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맺은 소련은 이때를 틈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하고 핀란드의 영토를 빼앗은데 이어 에스토니아 등을 차지했다. 전쟁은 유럽을 넘어 식민지가 있는 북부와 동부 아프리카 그리고 중동 지역으로 확산했다.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공격하자 인도양과 태평양에도 포성이 울렸다. 그러나 미국은 참전을 거부하면서 영국과 중국의 국민정부를 간접 지원하는 선에 머물렀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소련을 침략하자 소련은 영국와 동맹을 맺었다.
소련군은 6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면서도 모스크바를 지켜냈으며 독일군에 25만명이 넘는 사상자를 안겨줬다.
위 2차대전 사례 뿐만 아니라 다양한 세계사적 중요 사실들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