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슈카월드’가 있는데, 보통은 경제(특히 주식 관련)를 다루는 편이지만 시사, 사회적인 부분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전달해준다. 기억에 남는 영상 중에 하나는 최근 우리나라에서 2-30세대 내에서 갈등이 심한데, 이를 제지해줄 어른이 없다, 이것을 기성세대들이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말 요즘은 길을 묻고 의지할 어른이 없는 시대인걸까?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육체적으로 성숙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이 압도적으로 긴 편이다. 심지어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성인이 되어서도 사회적이든, 정신적이든 온전히 스스로 무언가 해낼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어보인다. 법적으로는 성인이니까, 책임을 지고 의미있는 일을 해내야겠지만, 그럴 자신은 없다는 게 아마 대부분 20대의 느낌 아닐까. 나 또한 그런 좌절감을 맛보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가장 필요로 했던 건 다름 아닌 미숙한 나를 격려해주고, 꾸짖고, 방향을 제시하는 어른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가르침을 내재화하면서 점차 안정된 정신을 가지고, 직장이나 개인생활에서 책임감을 갖고 지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은 고민을 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가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삶을 살아가며 때때로 우리는 성숙한 ‘어른’을 필요로 한다. 어른의 정의란 정말 다양하겠으나 나는 ‘자립하여 남을 도울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런 어른은 우리 주변에 많이 있는 것일까? 한편 나 또한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이렇게 다들 한번쯤 했을 법한 고민으로 찾았던 책이 우치다 타츠루 씨가 집필하신 ‘어른이 된다는 것’이었다. 일본어 원문의 제목은 더 간단한데, 그냥 ‘아저씨’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어른’보다도 일본 전후세대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이 부각된 단어라 하겠다. 어찌됐든 그럼 이 책을 보면 어른이 된다는 것이 뭔지 알 수 있는걸까?
그러나 책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저자가 개인 사이트에 올린 짧은 에세이를 모은 글로서, 언뜻 일관된 느낌이 들진 않는다. 일본의 정치외교적 문제, 교육론, 고령화, 젠더 이슈와 같은 시사 문제들을 나열해놓은 느낌이다. 분명한 건 저자는 상기한 이슈들에 적잖게 심각함을 느끼고 진지한 대안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과거 일본 문화의 정신을 옹호하는 것 같아보이지만, 단순한 보수파와도 다른 것 같다.
저자는 동경대에서 프랑스 철학을 전공하고 레비나스라는 철학자를 공부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책을 보면 레비나스를 인용한 부분이 아주 많다 (즉 그에게 있어 어른이자 스승은 레비나스였던 것이다). 책 맨 끝에 후기를 인용하자면 ‘어른이란 믿는 것이 없어졌을 때, 믿는 것이 없어진 상황을 믿는 계기로 끌어올릴 수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략) 어떤 모럴의 가치는 그 내부에 자존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부분을 어른이 된다는 것, 성숙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멋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콜버그에 따르면 인간의 도덕성은 타인의 인정 또는 벌에서부터 점차 개인의 양심과 보편 준칙으로 발달하는데, 어른은 충분한 도덕이 발달되어 여러 이슈에서 책임을 지고 의견을 내며 그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언뜻 아무렇게 나열한 것처럼 보이는 에세이를 읽는 법을 다소나마 알게 되는 것 같다. 저자는 글 내내 자신의 모럴(책에서 나오는 ‘아저씨의 도덕’이라 할 수 있겠다)의 적합함과 현 세태와의 괴리를 애쓰며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또 책의 맨 끝에 나쓰메 소세키가 나오는 이유도 알 것 같다. 나쓰메 소세키 또한 메이지 시대라는 배경에서 ‘인간의 성숙이란 무엇인가?’를 가장 많이 고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쩌면 나쓰메 소세키가 했던 고민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즉 그에게 있어 어른이자 스승은 나쓰메 소세키였던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암묵적으로 자신이 어른이 된 과정을 행간에서 드러내주고 있다고 느꼈다. 이렇듯 우리 곁에 어른들은 곳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또 유튜브 등을 통해서 어른의 의견에 닿는 법은 오히려 쉬워졌다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내 자신이 어른에게서 가르침을 받는 것, 또는 성숙해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오히려 걱정이 된다. 왜냐면 그런 고민 없이 성숙이란 발달과업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