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미야베 미유키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거침없이 술술 흘러 내려간다. 이제는 대가이니 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미야베 월드 제2막, 에도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미스터리 시리즈물에는 마법이나 상상같은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나온다.허무맹랑하거나 유치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현대물 대신 시대물을 택한 이유 중 하나가 발목잡히는 것 없이 마음껏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고, 그녀가 술술 풀어내는 이 공상같은 이야기들을 침 삼키며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긴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부분 중 하나가, 마음껏 상상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미야베 미유키는 에도시대 배경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에도 시대는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뺏을 수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연대감이 매우 강했습니다. 제가 에도 시대물을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이유는, 그렇게 따뜻한 인간의 정이 있는 사회를 향한 동경 때문입니다. 작은 것도 함께 나누고 도와가며 살았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영혼통행증은 미야베 월드 제2막에서 펼쳐내는 여러 시리즈물 중 그녀가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미시마야 주머니 가게의 시리즈물이다. 또 한번 내 상상을 펼쳐보자면 미시마야 주머니가게에서는 주인공에게 화자가 찾아와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한번 더 창이 생기기에 더욱 더, 상상의 나래를 크게 펼칠 수 있기에 작가가 더 사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 이를 10년간 쓰고 싶고, lifework라고 표현했으니! 뭐 물론 개인적으로 주인공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이제 처음 주인공이던 미시마야 주인의 조카 오치카가 결혼하면서 미시마야의 차남 도미지로가 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어린 나이에도 어려운 일을 겪어 그런지 어른스럽던 오치카와 달리 도미지로는 좀 가벼운 느낌이 든다. 스스럼없다고 해야 하나 아님 그냥 평범한 남자애의 모습이라 해야 하려나.
이번 영혼통행증은 미시마야 시리즈에서 흑백-안주-피리술사-삼귀-금빛 눈의 고양이-눈물점에 이은 7번째 작품이며 도미지로가주인공으로 나오는 두번째 책인 셈이다. 이번에는 오치카 때와 다르게 도미지로 이야기가 더욱 더 적게 나온 느낌이다.
이번에는 3명의 화자가 나와 이야기를 풀어간다.
화염 큰북
한결같은 마음
영혼 통행증
아무래도 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영혼 통행증'이라는 편이 가장 길고 깊이가 있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화염 큰북'이 가벼운 것은 아니다. 마음이 많이 아프고 깊이 있는 이야기였다. 한참이 지난 장성한 화자가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이야기하는 동안 정말 그 때로 돌아간 것처럼 실감나고 감정이 그대로 살아있는 느낌을 나도 같이 받았다. 정말 미야베 미유키는 천재임에 틀림없다. 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이것은 교육되는 것일까?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일까? 사춘기 아들을 두고 있는 내가 요즘 아이들을 보면 과연 저런 개인의 희생이 더 이상은 기대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나라고 해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보다 큰 목적을 위해 함께 양보하고 협력하는 것 말이다.
'한결같은 마음'은 집 근처에서 맛있게 사먹은 (도미지로가 먹을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 가게의 아가씨가 하게 된 이야기이다. 짤막하지만 안타깝기도 한 이야기.
'영혼 통행증'은 노인이 되었으나 담대하고 감정이 살아있는 화자를 나도 모르게 응원하는 마음이 들었다. 사람에게 귀천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첫편에서 무사의 늠름함과 형에 대한 사랑과 안타까움을 느꼈는데 이 편의 평민 화자에게서는 귀신을 안타깝게 여겨 대신 해결해 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정을 그대로 느꼈다.
소설은 그냥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쓰인 소설은 지식을 확장하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창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가장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