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라면 대학교1학년때에 많이들 접했을 반가운 책이다. 이를 통해서 유시민이 누구인지를 알았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배우지 않았던 역사의 새로운 면을 봤었던 거 같다. 책의 처음에 시작하는 드레퓌스 사건은 아예 처음 들어본 새로운 내용이었고, 사라예보 사건과, 러시아혁명, 대공황, 중화인민공화국, 히틀러, 팔레이스타인 등은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인데, 이 책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었다. 세계사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과 올바른 해석의 길잡이를 이 책은 해줬었다. 이 책 이후로 유시민은 시민사회를 주도하고, 정치인으로서 삶을 살았지만, 그의 정치적 소견과 행보는 차치하고, 그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배웠던 것들 때문인지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30여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이 책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 책이 재출간되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베스트셀러가 귀환한 것이다.
전면개정과 다른점은 20세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 20세기에 대하여 쓴 것인데, 지금의 개정판은 20세기가 끝난 시점에서 20세기를 회고하며 봤다는 것이다. 20세기를 돌아보고 현재 시점에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으로 간추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 이해되는 세계사에 균형을 맞춰보려고 시도한다는점에서 유용하다. 두차례 진행된 베트남전쟁의 발발과정과 그 밑에 깔린미국, 프랑스, 남북베트남 간의 권력관계를 찬찬히 풀어내지만 결론에 이르러 힘주어 강조하는 것은 베트남에서 학살 등을 저지른 가해자로서의 한국의 모습이다.
첫장의 드레퓌스사건은 유대인에 대한 유럽의 증오와 차별이 얼마나 오래되고 당연하게 여겨져왔는지를 보여준다. 드레퓌스가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고초를 겪었을까. 누가봐도 명백하게 드레퓌스의 잘못이 아니라고 밝혀질 수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을 덮을 정도로 그보다 더 크게 작용한건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당국은 악마섬으로 보내진 드레퓌스와 그의 아내와의 서신 왕래를 금지했고, 심지어 아내가 악마섬에 같이 살게 해달라는 청원까지도 기각했다. 진실이 다름을 간과하지 않은 피카르 중령이 아니었다면, 드레퓌스는 억울한 삶을 벗어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이렇게 역사에 기록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 에밀졸라다. 에밀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이 없었다면 이 억울함이 어떻게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을까. 지식인은 작품으로 평가를 받고 에밀졸라도 문학의 걸작을 남겼지만, 그가 작품을 통해서 사회를 고발했던 정신이 단순히 책에서 끝나지 않고 이렇게 행동으로도 일관성 있게 이어졌다는 점에서 나는 에밀졸라에게서 "나는 고발한다"만큼 더 훌륭한 작품은 없다고 본다.졸라는 빼어난 글 솜씨를 용감한 행동으로 옮겨 인류의 양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한가지 또 인상깊었던 챕터는 히틀러에 대한 내용이다. 히틀러는 정치에 뛰어들기 전까지 특별하다고 할게 전혀 없은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그림에 재능이 있었다고하며 한때는 그림으로 생계를 유지했을 정도였다. 히틀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홀로코스트를 자행하며 인류 역사의 슬프고 어두운 한 페이지를 남겼지만 그와 그의 추종자를 제외한 나머지는 비난에서 자유로운 것인가는 생각해봐야한다. 독일 국민은 사이비과학과 인종주의를 내세운 히틀러를 왜 그리 지지했는지, 독일 군인과 공무원은 학살명령을 그대로 집행했는지는 나에게도 항상 의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하여 정치철학자인 해나 아렌트의 견해를 바탕으로 악의 비속함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현대사는 19세기 이전에 비해서 훨씬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부분이다. 나는 이를 현대사는 아직 역사에 대한 해석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예전에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약간 달리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선택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프레임에서 20세기의 역사만큼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라고. 다른 의견이 있고 다른 시선이 있겠지만, 유시민의 편향되기 쉬운 시각을 보완해준다. 60대가 된 초판에서 반대쪽으로 지나치게 넘어갔던 시각을 다시금 중간에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40대 후반의 나에게 이 책은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신선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