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음속 어딘가에 불편하게 자리잡고 있지만, 막상 꺼내어 마주하기는 두려운 현실. 그 어느때보다 소비가 극에 달하고, 코로나 질병까지 맞이하여 이전에는 조금 거리낌이라도 있었던 일회용품 사용 및 각종 배달과 택배에 수반되는 쓰레기 배출이 합리화되며 지구에 쌓여가는 요즘.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지 두려운 상상을 간혹 하긴 했다. 나는 그래도 벌써 이만큼이나 살기는 했는데, 우리 아이들은 어떤 삶을 살게될까. 한참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미세먼지로 인한 마스크 사용 및 외출자제령이 내려질때도 불쌍하다는 생각을 했는데..코로나가 지배하는 요즘은 아예 일상이 마스크착용이다. 코로나 또한 인류가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는 지구의 저주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작년보다 더 덥고, 겨울은 더 춥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상당부분 기후변화가 진행되어 더이상 현재의 일상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기후변화시대를 단편의 소설로 꾸려나간다. 그 시대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아가고 누군가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을테니. 기후변화라는 엄중하지만 마주하기 차마 무서운 곧 닥칠 미래를 다큐멘터리로 그렸다면 애써 외면했겠지만, 약간의 상상을 가미한 소설로 쓰여지니 나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어 한권을 앉은자리에서 후딱 읽고 만다.
이 소설의 단편집 10편 중 3편은 '돔시티'를 다루고 있다. 돔 시티는 기후변화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안된 일종의 기후 안전도시이다. 돔시티 안에서만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어린 시절 미래를 그린 SF영화에서 비슷한 컨셉의 돔시티를 본 기억이 있다. 새하얀 방안에 새하얀 옷을 입은 창백한 사람들은 전부 무균처리 된 곳에서 살면서, 사람간의 접촉도 금지되어있다. 그 밖은 여전히 동물적이고 황폐하게 버림받아있지만 말이다. 이런 말도안되는 상상이 인류의 미래라니? 아무리 SF지만 너무 나갔네 싶어서 별 다른 감흥이 없었던 이 장면과 기억을 되살린것은 최근 코로나로 인한 마스크 착용의 일상화였다. 1년이면 끝날줄 알았던 이 바이러스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가고, 정부는 바이러스 차단이라는 명목하에 사람들의 자유와 일상을 통제하기 서슴지 않으며, 사람들도 그러한 통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이 비정상적인 상황. 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장기화되면 마스크의 확장판으로, 특정지역에 거대한 마스크를 씌우지 않겠는가. 그 지역에서는 전부 무균처리가 되어있을 것이고, 사람들간의 접촉도 최소한의 접촉만 허용될 것이며, 비대면이 대면을 압도하게 될 것 같다는 상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다만, 이책에서는 내가 상상치 못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가 그 돔시티 안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점이다. 자원과 공간은 한정적이니, 돔시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자들은 선택을 받은자들이어야 했다. 인종, 민족, 종교, 재산, 교육수준, 전과 유무 등 상황에 따라 모든것이 결격사유가 될 수 있고, 돔시티 진입에 수반되는 엄격한 내부절차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돔시티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땅굴을 파는 사람들, 밖으로 추방되는 사람들, 경계에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과 돔시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종 사건사고는 단순히 상상이라고 하기에는 개연성이 너무나 높았고, 그래서 너무나 가슴을 묵직하게 떄리는 비극적인 현실 같았다.
현재의 계층갈등이 부의 많고 적음떄문에 발생하고, 그로인한 피해는 단순히 비싼 음식을 덜먹고, 좀 더 싼 집에 살고, 여행을 좀 덜가는 어떻게 보면 포기하려면 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들이라면, 기후변화시대의 계층사회는 진입하지 못하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선택받지 못한 자는 온도가 70도에 육박하고 먹을것과 안전도 보장되지 못하는 돔시티 밖으로 추방당해야 하는 것이니 말이다.
가볍게 선택한 소설한권이 꽤나 묵직한 돌을 심중에 던졌다.
기후변화시대가 아니라 기후위기 시대가 맞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내 옆에도 커피 테이크아웃잔이 놓여져 있으니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나부터 지금부터 바꿀 수 있는것을 시작해야겠다는 섬뜩한 위기감이 날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