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보다 자녀교육에 욕심이 있는 편이다. 특히 육아는 엄마의 손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빠로서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에게 나만의 교육을 하고 싶다. 이를 위해서 많은 육아책과 유튜브 방송들을 보지만, 사실 대부분의 매체들은 엄마에게 포커스가 맞춰져잇다. 그러나 직접 출산을 하지 않고 모유수유를 할 수도 없는 아빠는 아빠만의 친밀도를 형성하는 육아법이 필요하다. 그러한 내게 이 책은 단숨에 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다. 평범한 아버지의 위대한 자녀교육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더없이 훌륭한 소재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책을 펼쳐보니 확실히 여느 육아책이랑은 달랐다. 아니 육아책이라기 보다는 자녀와 함께 내가 성장하는 책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아이가 막 태어나서 이제 막뒤집기를 하고 걸음마를 시작할 때 어떻게해야하는지를 기록한 것이 육아책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아이가 이제 스스로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알게 되고, 또 반항을한다거나 요청을 할 때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지, 공부를 하기 싫다고 징징대면 아빠로서 취해야할 행동이 무엇인지 한번쯤 생각하게 한다. 이러한 생각속에서 나는 아빠의 역할에 대해 매번 고민하게 될 것이다. 흔히 부모중에 한명은 천사 역할을 한명은 악마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을 한다. 그래서 악마가 아이를 채찍질하면 천사가 아이를 달래줌으로서 채찍과 당근의 효과를 누리는 것이다. 적절한 자극은 아이의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이므로 이는 매우 보편타당하다. 그런데 과연 엄마아빠중에 누가 천사이고 누가 악마일 것인가. 이에 대한 고민은 아마 유사이래 끊임없이 진행되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절정이 바로 요즘세상이다. 남녀의 성역할에대한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요즘, 과거라면 엄마가 악마역할과 천사역할을 동시에 하면서 아빠가 무심할수록 아이가 잘 자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빠는 천사의 역할의 경계정도에 있었다. 그러나 나는 칼비테의 교육법에 나온 것처럼 적극적인 아빠가 되고싶다. 천사도 좋고 악마도 좋다. 천사라면 아이를 보듬어줄수 있는 능력을, 악마라면 아이를 효과적으로 능력을 배양할 수 있게끔 하는 능력을 내가 갖게 되고 싶다.
독일에서 100년이상 내려올정도로 검증된 칼비테의 교육법이지만 마냥 스폰지처럼 흡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확실히 독일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과 대한민국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때문에 상황에 맞춰서 육아법을 흡수할 필요가 있다. 내가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정서적 교감이다. 독일의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자라나기를 주입받으면서 자라지만 상대적으로 우리 아이들은 엄마아빠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서로 교감하면서 지내게 된다. 19세만 되어도 집으로부터 독립을 하는 독일의 아이들과 달리 대한민국 아이들은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부모와 오래 곁을 함께한다. 사실 나도 생각해보면 아이가 힘들어하고 경젝적으로 자립할 능력이 안되는데, 등을 떠밀면서 억지로 독립을 강요하고싶지는 않다. 어차피 떨어져나갈 아이라면 최대한 오래 같이 지내면서 그 온기를 느끼는 것도 부모로서의 행복이 아닐까싶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아이가 행복해야 부모가 행복하기도 하다. 부모가 아이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정서적 교감을 빼고는 모든 방법들이 다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적 교감은 독립적인 육아환경과 배타적이지는 않으나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육아환경보다는 치마폭에 쌓인 육아환경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물론 나는 내 아이를 부모의 치맛폭에 감싸고 돌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도 아이가 아빠가 무언가를해주기를 원하면 항상 혼자 해보고 안되면 요청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무조건 엄마아빠가 해준다는 생각을 넘어서 혼자서 시도해보되, 뒤에는 엄마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아아이가 느꼇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아빠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발자국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진정으로 발전하는 길이고, 엄마아빠와 교감하는 것이 아닐까? 신뢰받는 부모와 발전하는 아이야말로 내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육아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