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두 번해도 일만 나면 오해"
‘사실충실성’ 이라는 뜻을 가진 이 책은 내가 세상을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기 충분했다.
책은 13개의 상식 테스트로 시작되고, 나는 4문제를 맞혔다. 굉장히 충격적인 결과였다. 평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편이라 생각했는데 이것 또한 나의 오해였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이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특히 여성과 아동 등 사회적 약자 관련 문제를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출근할 때 사회 면의 뉴스를 보고, 세상의 여러 문제에 분노하던 나는 더 많은 사회적 약자가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에 이 세상을 부정적인 프레임에 가둬놓았나 보다.
이 테스트 결과가 꼭 지적 수준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도 충격이었다. 오히려 노벨상 수상자나 의료계 연구원 중 참담한 결과를 내기도 했다는 사실이 위로 아닌 위로가 되었다.
느낌은 생각이 아니다. 나는 학교 다닐 때도 언어영역에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곤 했는데 오답의 원인은 주로 나의 생각이 지나치게 개입했기 때문이다. 화자의 처지에서 답을 골라야 하는데 나만의 정답을 찾으려고 애썼더니 형편없는 점수는 당연했다. 지금껏 나는 느낌대로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느낌이 옳다고 믿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만하다. 대다수의 사람은 이제 ‘중간’ 이상의 생활 수준을 누리고 있다. 기초 보건 서비스를 제공받고, 극빈층의 비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인류는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데이터가 이렇게 따뜻할 수 있을까? 인간의 한계와 인류의 가능성을 동시에 느낀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도표와 통계를 이용해 그러한 편견들을 합리적으로 깨뜨려준다.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열 가지 본능(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 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에 의해 설명하고 있다. 이중 공포 본능은 부정적인 사실을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언론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언론에 대해 비난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서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자연재해, 기근, 정치적 실책, 부패, 예산 삭감. 질병, 대량 해고, 테러 등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부정적 뉴스를 접하며 산다. 하지만 언론에서는 선별적으로 보도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좋은 소식이나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부분은 뉴스거리가 되질 않기 때문이다.
크기 본능을 읽으면서는 책에서 제안하는 비판적 사고방식이 회사 업무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일정한 크기를 넘어선 수는 다른 수와 비교하지 않으면 항상 커 보인다고 했는데, 회사에서도 비교치 (전년대비, 계획대비) 없이 만든 숫자만 넣은 보고서를 보면서 가졌던 불편함이 떠올랐다. 또한 예산의 80%를 차지하는 가장 큰 단일 항목을 추려내어 살펴보라는 제안도 회사 업무에서의 효율적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 외에도 문화나, 종교에 따라 사람들의 삶의 방식, 여성 1인당 출생아 수 등이 결정된다는 얘기도 흥미롭고, 산모 사망률, 학습 수준의 개선과 같은 과제들이 직접적인 요인들이 아닌 지역 병원까지 갈 수 있는 운송 수단, 해가 진 뒤에도 숙제할 수 있는 전기 공급과 같은 인프라에 의해 더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도 무척 의미심장하다. 지난 시절 우리나라의 압축성장이 많은 부분에서 비판받지만, 그럼에도 경제 성장으로 인해 갖춰진 인프라가 지금껏 사회 발전의 주된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이 책은 나의 편협한 사고를 확장시켜주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팩트풀니스는 세계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요즘같이 정보가 난무하고 알고리즘 및 스스로의 편향을 통해서 입맛에 맞는 정보들만 손안에 모이게 되는 경향이 있을 때 팩트풀니스는 덕목이라기보단 생존의 기본 소양인 것 같다.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인 나는 매순간 마주하는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 그리고 이분법적 사고에 여전히 시달린다. 이제부터라도 끊임없이 점검하면서 세계관을 다시 구축해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