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세기는 태양 아래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은 '역사의 시간'을 체감하기 좋은 백년이었다.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등장하고 걸어 온 지금까지의 길을 통틀어 그토록 많은 것이 사라지고 생겨난 100년은 없었다. 20세기는 언론과 지성인의 시대였으며 정치체제로써 국민국가와 민주주의가, 경제체제로써 자본주의가 주류를 형성하는 시기였다.그 사이에 19세기 세계를 지배했던 제국주의가 몰락했으며 공산주의가 자본주의와의 경쟁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저자가 20세기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꼽는 사건은 알프레드 드레퓌스 간첩 사건이다. 유대인이었던 프랑스 포병 대위 드레퓌스는 제국주의와 군국주의가 만연했던 19세기말 독일에 대한 갑첩혐의로 체포되었다. 당시 유럽사회에 만연하였던 유대인 차별에 편승한 언론의 반유대주의 선동과 군중의 폭력행위, 군부의 전횡과 사법제도의 결함 등으로 인하여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군적 박탈과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며 약 12년 가량의 법정 투쟁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고 복권되었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이 억울함을 해소하는 과정에 불과한 스토리일뿐인데 19세기 막바지에 프랑스에서 벌어진 이 사건이 무엇때문에 20세기의 시작을 알린 사건으로 인정 받을 수 있었을까? 또 어떤 면이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마음을 이끄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은 '인간적 요소' 일 것이다. 드레퓌스 가족은 서로 믿고 사랑했다. 그 사랑과 믿음으로 참혹한 불운과 시련을 이겨냈다.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드러낸 피카르 중령, 지성과 열정의 화신 에밀 졸라, 끝까지 책임을 다한 클레망소 총리, 언론의 선동과 반유대주의자의 집단 광란을 이성의 힘으로 이겨낸 시민들,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허물어지는 것을 안타까워 하며 재심 요구파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한 세계의 지식인들, 그들은 인간이 어리석고 때로 기괴하지만 지적 재능과 선한 본성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했다.
드레퓌스 사건은 '지식인과 언론의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어떤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해야 할지 명확하게 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보통은 고등교육을 받고 학위를 취득해 연구, 교육, 창작, 정보유통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며 말과 글로 대중에 생각에 영향을 주는 사람을 지식인이라고 한다. 정치인과 정당이 선거에 이기려면 시민 사회의 다수 의견이나 여론을 존중해야 했다. 지식인이 말과 글로 여론을 움직여 권력의 향배를 좌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언론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못지 않은 권력을 행사하는 '제 4부'가 되었다. 언론사는 개인기업 또는 주식회사 형태의 사기업이지만 정보를 유통하는 공적기능을 담당했다. 지식인은 언론을 통하지 않고서는 대중과 접촉하기 어려웠고 정보유통망을 장악한 신문, 잡지, 방송 종사자도 지식인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고 언론이 꾸준히 보도하면 사실이 아닌 것도 사실이 되었다. 지식인과 신문, 방송, 잡지의 시대는 컴퓨터를 활용한 네트워크 혁명이 일어난 20세기말까지 이어졌다. 그것은 20세기 특유의 현상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유럽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유럽 기독교 세계는 천년 넘는 세월 동안 종교, 정치, 법률, 경제, 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유대인을 차별했다. 이러한 유대인 차별은 히틀러의 나찌당에 의해서 정점에 이르렀고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 최악의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드레퓌스 사건을 취재 중이었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온 신문기자 테어도오 헤르츨이 유대인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적대감을 목도하고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 운동을 일으켜 팔레스타인을 참극의 땅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끝으로 드레퓌스 사건이 1차 세계대전의 징후를 드러냈다. 드레퓌스 대위는 적국 독일에 군사기밀을 넘겼다는 누명을 썼다. 프랑스는 1870년 프로이센에 패전해 독일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악화되어 있었고 아시아나 아프리카 식민지를 두고 유럽의 제국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으며 이제 막 등장하기 시작한 국민국가는 호모사피엔스의 부족 본능을 강화하는 상황이었다. 또한 산업화 이후 늘어난 공산품 시장 확보를 위한 제국들간의 식민지 경쟁은 각국 군부의 힘을 강화시켰고 대통령과 내각은 군부를 통제하지 못했다. 작은 불씨만 튀어도 전면전이 터질 수 있는 상황이 이어졌으며 실제로 사라예보에서 울린 총성으로 전란의 화마가 유럽을 휩쓸었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들의 무덤이었다.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던 제국을 무너뜨리고 국민국가의 시대가 막을 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되었고 러시아 황제의 궁전에는 붉은 깃발이 올랐다. 독일제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오스만 제국은 케말파샤에 의해 터키 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내재적 결함 즉 대량생산 체제와 이에 따른 총수요 부족 가능성은 제국의 몰락 이후 대공황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국민국가 형태의 경쟁상황에서도 제 2차 세계대전이라는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으로 서방세계에서는 수정 자본주의가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에서는 공산주의가 헤게모니를 장악하며 냉전시대를 열었다. 이후 중국의 국공내전, 한반도의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을 통하여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세력은 자기 체제의 우월성을 입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 과정을 거쳤으며 결국 20세기말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소련 연방의 해체를 통하여 적어도 경제체제로서는 자본주의가 승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20세기는 언론과 지성인의 시대였으며 국민국가가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틀로 자리 매김하는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두발쯤 걷고 있는 21세기에는 인류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현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전 지구적 문제 즉 핵전쟁과 기후위기등은 인류가 진화의 시간을 거치면서 강화된 부족본능에 기대어서는 해결할 수가 없다. 핵주권과 환경주권은 국민국가에 있는데 모든 국민국가는 다른 국민국가를 불신하고 경계한다.
모든 국민국가의 다수 국민은 정부가 인류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 살피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시간'에는 부족본능을 없앨 수 없다. 단지 인류의 지적 재능을 최대한 발휘한다면 어느 정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을 뿐이다. 유럽연합의 사례를 보면 희망이 아주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오늘 시점에서는 인류 전체적으로 지적재능보다 부족 본능의 힘이 센 듯하다.
역사학자 유발하라리는 최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의 파괴자인 호모사피엔스가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이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인간이 당장 신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런 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유전자를 조작해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핵전쟁이나 기후 위기로 그 이전에 절멸할 확률보다 높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절멸의 운명을 피하는 데 성공할 만큼 인류가 현명해진다면 어느 정도 책임의식이 있는 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머지 않아 끝난다. 논리적으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