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주제는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안동 외'로 경북지역 탐방이 주가 되었으나,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위치한 옛 백제의 터를 방문한 편이 나에게는 매우 인상 깊었다. 학창시절 국사교과서에 실리는 문화재들은 대부분 매우 상징성을 가지는 작품(?)들 위주였고, 당연히 국보로 지정된 대형 문화재들이 그 사진 칸의 단골주인이었다. 하지만 나의 기억 속 아직도 깊게 남아있는 작품으로서 서산마애삼존불상은 가운데 미륵보살의 해맑고 천진한 미소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였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유홍준 교수 또한 서산마애삼존불상에 대해 상당 페이지를 할애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원래 1980년대까지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다가 뒤늦게 해당 지역을 탐방한 국내 고고학자에 의해 알려진 이 세기적인 작품은 백제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700년대경 한반도의 삼국시대쯤 동북아시아에서 널리 유행하던 삼존불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불가 사상에 도가 사상이 합쳐진 것으로, 내세에 대한 믿음에 현생에 대한 기원이 합쳐진 토착화된 한국식 불교의 영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 발견의 비화에 따르면 6.25때 한 나뭇꾼이 불상을 산신령으로 잘못 오해하여 왠 해맑게 웃고 있는 산신령이 양쪽에 본부인과 둘째 작은부인을 두고 그 두 부인 사이에 산신령을 사이에 두고 경쟁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해석을 해 웃음을 주었다는 얘기가 있다. 정말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보면 나무꿋의 해석이 전혀 엉뚱한 것은 아닐 수 있겠다 싶은데, 그 이유는 그만큼 불상으로서 위엄과 위상 보다는 정말 편안한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불상이 조각되었기 때문이다. 유홍준 교수는 여기서 또 다시 '백제의 미소'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는데, 삼국시대 불상들을 보면 6세기부터 7세기 전반에 걸친 불상들에는 대개 미소가 나타나 있고, 이는 동시대 중국과 일본의 불상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을 미루어 이는 6,7세기경 불상의 미소는 당시 동북아시아 불상의 보편적 유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상의 미소는 7세기 경부터 사라지고, 대신 절대자의 근엄성이 강조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유독 백제의 불상들을 보면 인간미가 더욱 살아나게끔 표현되어 있다. 삼불 김원용 선생은 이 서산마애삼존불상이 발견된 이듬해에 한국 고미술의 미학이라는 글을 통해 이를 재조명 했다. 백제 불상의 얼굴은 현실적이며, 실재하는 사람을 모델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그 미소 또한 현세적이다. 군수리 출토~ (중략) ~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라도 듣고 앉은 것 같은 인간미 흐르는 얼굴과 자세를 하고 있어서 백제 불상의 안락하고 현세적인 특징을 단적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런 중 가장 백제적인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은 서산마애불이다. 거대한 화강암 위에 양각된 이 삼존불은 그 어느 것을 막론하고 말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인간미 넘치는 미소를 띠고 있다. 본존불의 둥글고 넓은 얼굴의 만족스런 미소는 마음좋은 친구가 옛 친구를 보고 기뻐하는 것 같고, 그 오른쪽 보살상의 미소도 형용할 수 없이 인간적이다. 나는 이러한 미소를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기를 제창한다. 정말 그렇다. 내가 비록 백제인들을 눈으로 보거나 그들의 사진 한장 발견할 수 없지만, 이 불상을 통해 그 시절 사람들은 이랬겠구나 싶은 그러한 감정을 전달 받는다. 과거 미술을 하며 기교 익히기에 심취했던 어린 시절에는 좀 더 짜여지게 예쁜 인공적인 미를 추구했던 경향이 있었다면 나이가 마흔이 되고 세상의 많은 일을 겪으며, 갖가지 아름다운 미술작품을 접해본 나로써는 이러한 자연스로운 사실적인 작품이 나에게 더 큰 감명을 준다. 따라서 이는 자연스럽게 나이들어감에서 터득하는 삶의 이치가 아닌가 싶다. 나는 이제 아름다움을 찾으러 굳이 미술관을 찾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도 아름다움은 언제든 찾을 수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서산마애삼존불은 현실 속 아름다움을 너무나도 잘 표현한 백제시대의 리얼리즘 작품이 아닌가 싶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 날이 풀리면 반드시 아내를 설득하여 서산마애삼존불상의 미소를 음미하고 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