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긍정하고 사랑한, 앤 셜리
앤은 과거로의 여행을 선물한다. 빨강 머리앤을 읽고 있으면 유년시절의 기억이 함께 따라온다. 어린 시절의 온기와 추억이 빨강 머리앤의 내용과 뒤섞이며 과거로 회귀하는 기분은 상당히 유쾌하다. 또한 성인이 된 후 빨강 머리 앤을 다시 펼치자 내가 잊고 지낸 앤이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유머나 웃음 코드는 앤의 말투와 뜬금없는 상상력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앤만의 특유의 사랑스러운 말투, 한번 시작하면 끝나지 않는 장문의 대화, 주변을 묘사하는 기발한 표현력... 신기하게도 이 모든 것들이 성장과정과 사회생활 속에서 받은 상처들을 치유해준다. 어릴 때 보았던 애니메이션 속 앤이 웃음을 주는 친구였다면 지금은 지친 나를 다독여주는 동료 같다. 1회독을 했지만 지치고 힘든 날이면 책장에 기대 앉아 앤을 다시 찾게 될 것 같다. 양장본 빨강머리앤은 오랜시간 가장 좋은 책장 한자리를 차지하고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읽게되면 시시해서 읽다가 책장을 덮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가 무색하게 앉은 자리에서 완독했다. 어른들도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빨강 머리 앤>이 현재까지 사랑받는 걸작으로 남을 수 있었던 힘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변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치며 밝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고아 소녀의 성장기가 갖는 매력에 있을 것이다. 앤이 보여준 가치는 현재에도 의미가 있다. 예기치 못한 그 길에 잔잔한 행복의 꽃이 피어나리라는 긍정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