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내 인생이었고, 인생이 곧 여행이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아마도 작가가 말하고자는 이 책의 주제는 이 문장에 다 들어 있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만큼 여행을 많이 했다는 작가의 생을 관통하는 여행기를 통해, 또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으며 미래에도 지속될 삶과 여행의 닮은 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삶 자체가 여행일 수도 있겠다.
추방과 멀미
작가는 상해 푸동공항에서 비자가 없어서 추방을 당한다. 그리고 첫 여행지였던 중국에 대한 혼란과 실망이 야기한 정신적 멀미의 괴로움이 남아 추방되어 돌아온 것이 다행으로 다가오는 내면의 각성과 마주한다. 그래서 내 집 골방 여행을 하며 오랫동안 미뤄왔던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작가에게 있어 창조의 세계도 여행이니까 아주 드라마틱한 여행지를 다녀왔을 것이다. 결국 여행의 본질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여러 가지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순백의 시트에 누웠을 때 느꼈던 안도감과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유로 호텔을 좋아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래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 약발이 떨어지기 전에 이런 경험을 복용해야 다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거 같으니까 이런저런 합리화를 해가며 결국은 그것을 해내고야 만다는 것이다.
오직 현재
작가의 말처럼 여행기를 여행하면서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생한 보도를 하는 기자가 아니고서는. 여행을 다녀와서 사진을 정리하고 보면서 그때를 추억하면서 기록을 하기도 하고 그리워하기도 하는 것 같다. 결국 과거가 생생한 현재가 되어 언어로 옮겨지고 그 후에 생각이 되어 유통된다. 어쩌면 우리는 이 현재를 생생하게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떠나고 돌아오고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인간이라는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이 우리를 여행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한다. 비용도 많이 들고 피곤하고 위험한데도 우리는 여행을 가려고 한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같은 거라니 거부한다고 거부되는 건 아닌가 봅니다. 사실 돈이 없고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우리는 매일 어디론가 떠나기를 꿈꾼다. 우리는 모두 호모 비아토르(여행하는 인간) 일 수밖에 없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우리가 가볼 수 있는 여행지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여행을 가지 않을 때는 TV 프로그램이나 책자 등을 통해 타인이 경험한 여행지를 편안한 자세로 보면서 재구성을 한다. 누군가의 여행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고 다음의 여행지를 미리 체험하고 상상력을 동원해 재구성해서 새로운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듯이. 우리는 타인의 간접경험에 우리의 직접경험을 얹고 그 위에 다시 누군가의 간접경험을 추가하면서 하나의 여행 경험이 완성될 것이다.
그림자를 판 사나이
우리에게 그림자는 크게는 국적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그림자가 우리를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작게는 직장일 수도 있고, 더 작게는 집일 수도 있겠다. 그림자를 놔두고 떠났더라도 돌아오면 그림자가 생기는 삶, 그것이 지금 현재 우리가 거주하고 생활하는 일상일 것이다.
아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지구촌은 하나라는 말처럼 우리는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일단 여행지 공항에 도착하면 모두 환영 인사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여행하면서 받은 환대와 그것이 여행의 큰 의미임을 이야기한다.
노바디의 여행
여행을 좋아하는 가장 첫 번째 이유가 나를 알아보는 이 없는 곳에서의 섬바디로서 느끼는 자유로움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불편하다가 또 어떨 때는 노바디가 되어 편해지는 순간도 있다. 아무튼 아무것도 아닌 자로서의 여행은 가벼운 짐만큼 홀가분하다. 내 모든 것에 관심이 없는 시선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고, 누구의 간섭도 없이 제 오감을 다 열어 만끽할 수 있는 여행만큼 좋은 건 없는 것 같다.
작가의 말 중에 긴 여행길에서 나를 참아준 동행들에게 특별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는 내용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여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가 아닐까 싶다. 별것 아닌 걸로 다투기도 하고 날선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함께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고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느끼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맛보고 나누었던 이들이 없었다면 여행은 그저 나만의 지루함으로 남지 않았을까 싶다.
풍경을 보듯 활자를 보며 흐뭇했던 시간이였다. 책을 읽는 동안 제가 다녔던 몇 안 되는 여행 지도 떠올리며 행복한 추억 팔이도 경험했다. 누구에게나 여행의 에피소드는 있기 마련이라 작가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제가 겪었던 일들이 자연스레 떠올라 피식 웃게 되는 순간도 있었다. 책을 통해 어딘가를 떠났다가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평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