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감각
2019.8월 이명로
경기가 안 좋아서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서 내 월급은 0%대밖에 못 올려주겠다고 하는 마당에 왜 부동산(자산) 가격은 10%씩 상승을 하는걸까? 저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화량이라는 일관된 관점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수 많은 경제 이론과 지표들이 자산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해왔지만 유감스럽게도 나의 생존의 문제에서 만큼은 그 답을 주지 못 했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기관에서는 어느 해 물가가 2% 올랐다고 발표하는데, 내가 매일 타는 버스요금은 10%가 올랐고, 이발비용은 20%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살 집은 경이로운 상승률을 기록한 마당에 내 월급은 고작 1% 정도 오르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그나마 삭감이라도 안 당한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특유의 통찰력을 통해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수량에 따라 많은 부분이 결정됨을 보이며, 경제 펀더멘탈의 실질적인 변화나 자산의 가치 변동이 없었더라도 통화량이 2배 늘었다면 자산의 가격은 2배가 될 수 있음을 아주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한편, 책의 서두에 저자는 자본주의 세상에서의 '돈'을 새로운 관점에서 정의하며 대중들에게 오늘날의 화폐경제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점은 2008년 이후 다수의 경제학자들로부터 미디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어 왔지만 그것을 전 지구적 화폐경제 생태계의 관점에서 이해하지 않는 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개개인으로서는 이해되어오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저자는 프랑스대혁명 이전의 미시시피 버블, 미국의 독립전쟁 중의 국채 위기, 미국 남북전쟁 과정에서 남부의 채권이 가치를 잃고 몰락하는 과정을 통해 화폐경제 시스템이 갖고 있는 맹점들을 이해하기 쉽게 꼬집었으며, 오늘날에도 우리 경제가 이 같은 문제점을 태생적으로 안고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접하는 돈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빚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해 보자면 이렇다. 무인도에서 권력을 가진 A라는 인물이 총 1만원이라는 통화를 발행하여 B에게 빌려준다. 이 때 B가 A에게 5%의 이자를 약속한다면 B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자 500원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조금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보자면, 똑같은 사회 속에서 총 1만원의 통화가 있고, C가 5천원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화폐권력을 가진 A가 5%의 이자를 요구하며 5천원을 B에게 대출했을 때, B가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하여는 열심히 노력하여 C로부터 250원의 부(富)를 빼앗아 와야만 한다. 즉, 이 원리를 우리 신용사회로 확장해 생각해 볼 때, 누군가(B)가 채무를 은행(A)에 갚는 행위는 누군가(C)는 그 이자만큼의 부를 강탈 당했다는 뜻이 되며, 이러한 현상이 지속될 때 C 같은 낙오자가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게 하지 위해 항상 이자율 이상으로 신용을 팽창시키려는 유인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과거 10년 동안 주요국들은 통화량을 약 2배 이상으로 늘리며 신용팽창을 방조해 오게 되었다. (물론 권력을 가지지 못한 개인이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 그 사람은 위폐범으로 몰려 권력을 가진 자에 의해 신체의 자유를 박탈 당할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중 80%를 차지하는 범주가 부동산인데, 최근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라는 둘 째 치더라도 나와 내 가족을 잘 보살피고 지켜야 할 텐데, 가정의 부 대부분이 부동산에 투입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정을 지키려면 부동산을 모르고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따라갈 것이라는 우려들에 대해 저자는 나름의 직관으로 명쾌하게 답을 내 주고 있는데, 20년 전의 일본과 오늘날의 한국은 부채의 주체가 다르기 때문에 한국의 부동산이 일본을 따라 붕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1) 한국은 금리를 급격히 상승하지 않고 잘 대응하고 있으며, (2)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통해 부채의 사전적인 구조조정을 뼈 아프게 겪은 터라 부채가 확대되는 시간이 아직 짧았고, (3) 주거용 부동산에서는 한국만의 전세제도를 활용해 세입자와 집주인이 금융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특성으로 인하여 한국 부동산이 비교적 안정적일 수 있다고 진단 내리고 있다.
한편, 세계 주요국들이 최근 10년간 통화량을 급격히 늘려온 것이 신용화폐 체제에 대한 신뢰를 저하해 새롭게 금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일각에서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자산들이 새로운 탈중앙 메커니즘을 이용해 디지털 금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저자는 비교적 간단하게 이 문제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는데, (1) 우리가 신용화폐 제도의 달콤함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제도권에서 이것을 포기하기 어렵고, (2) 금 매장량이 적어 경제규모를 계속 팽창할 수 없게 되며, (3) 금본위제로 돌아가면 현재 경제 발전에 뒤처진 후진국들에게 경제성장의 희망을 박탈하는 것이 될 것이며, (4) 향후 국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는 무역이나 전쟁을 통해서만 금 보유량의 확대가 가능하게 된다는 점 때문에, 인류가 금본위제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