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영화나 소설의 소재로 가장 많이 쓰이는 사건을 꼽으라면 일제시대, 6.25전쟁 그리고 민주화운동이 아닐까 싶다. 아픈 역사는 더 깊은 인상을 남기기 마련이라, 행복했던 순간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되고 더 많은 깨달음을 준다.
제목만 보아서는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이 소설은, 불과 30여년 전에 일어났으며 아직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5.18 사건을 그리고 있다. 사건의 성격 자체가 그렇듯이, 대단한 영웅이 아닌 당시 광주에서 살아가던 일반 시민들이 주인공이다.
친구 정대와 함께 정미누나를 찾기 위해 광장에 갔다가 총에 맞은 정대를 두고 홀로 도망쳐 온 중학생 동호는, 그 죄책감에 상무관에 가서 시신 수습을 도우며 정대의 시신을 찾는다. 그러나 정대는 이미 광장에서 죽은 뒤 군인들에 의해 트럭에 실려 덤불숲에 버려졌고, 쌓인 시체들 사이에서 친구를 찾던 정대의 혼은 어느 순간 동호 또한 죽음으로 걸어왔음을 알게된다. 동호와 함께 시신을 수습하던 은숙, 선주, 진수는 모두 살아남았으나,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광주의 짐을 이고 산다. 5.18 당시 여고생이었던 은숙은 이후 출판사에 취직하지만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은 여전히 군부 독재가 진행되고 있었고, 검열 중 수배자의 글을 교정했다는 이유로 뺨을 일곱대 맞는다. 선주는 5.18 이후에 노동운동에도 가담하고 현재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점차 운동의 전선에 나서지는 못하고 자신을 감추려 한다. 과거사에 대한 인터뷰도 꺼려하는 그녀이지만, 역시 다시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동일하게 행동했을 것이라는 광주의 한 사람이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던 예쁘장한 청년 진수는 모진 고문과 감방 생활 후에 사회로 돌아오지만, 그가 예뻐했던 감방 동생 영재는 정신병원에 가게되고, 그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으로 어린 아들을 잃은 동호의 어머니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한 많은 세월을 꾸역꾸역 살아간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라는 글귀가 계속해서 마음에 남았다. 누군가에게는 이미 잊혀진 일이겠지만,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처이다. 그 상처가 제대로 어루만져진 적이 없어 현재까지 치유되지 못하며 곪아가고 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 총을 들었지만 쏘지도 못했던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한 총질을 해대고서도 당신은 죄가 없다던 그 뻔뻔함은 변함없이 이어져, 치매에 걸려 법정 출석은 불가하나 골프장 라운딩은 할 수 있다는 무식한 논리를 대고 있다. 더 이상 기만하지 말자. 이제와 아픈 과거를 또 한번 건드려봤자 무슨 소용이냐고 반문할 양심 없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과오로 한평생 짐을 지고 살아가는 가여운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더 철저하게 밝혀져야한다고, 당신은 반성해야하고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한다고 말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