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책을 1/3 정도 읽다가 그만 읽을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저자의 의도가 지나치게 비트코인 숭배에 가깝다고 느껴졌을 뿐 아니라, 경제학자로서 가져야 할 학자적 도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수준으로는 범접하기도 어려울 케인스와 같은 경제학자를 모욕하는 과오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케인스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갖을 수는 있지만, 그가 경제학과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모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케인스는 20세기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거인이 아닌가? 저자는 이미 비트코인 숭배자이기 때문에 비트코인에 해가 되는 그 어떤 견해라도 무시될 것이므로, 이 책은 경제학 서적이 아니라, 비트코인에 대한 광고지에 불과한 것이었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가치를 갖게 되는 가장 큰 이유를 양적으로 수량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에서 찾고 있다. 즉 금이 가치를 갖는 이유가 새로 만들어 내기 어렵기 때문, 즉 저량/유량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기 때문이고, 다른 지폐는 정부가 무한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결코 가치를 저장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비트코인이 갖고 있는 의미조차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빈약한 토대를 만들어 보고자 비트코인을 금과 동일시하면서 역사속에서 금본위시대에 인류가 가장 풍요로왔다는 근거 없는 사실을 나열하고 있다. 저자가 금본위시대의 풍요로 예를 든 것은 프랑스의 평화로왔던 벨에포크시기이다. 산업혁명과 프랑스 혁명이후 서구에서 비약적인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지고 인류의 부가 증가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이것이 금본위제의 결과라 하니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단지 금만이 돈이었다면 당시의 풍요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당시는 금본위를 바탕으로 지폐경제가 태동하면서 자본의 축적이 가능했고, 대량생산과 민주적 경제체제가 뒷 받침 되었기 때문에 경제 도약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울러 그 시기 일반 노동자들의 삶은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고, 프랑스와 영국 등 제국의 번영은 무수한 식민지들의 희생위에서 이루어 졌음을 감안할 때 금본위 시대로 돌아만 가면 벨에포크 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논리는 헛웃음을 유발하게 할 뿐이다. 저자는 비트코인이 현재의 돈과 같이 거래를 중재하는 화폐로서의 사용이 불가하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고, 과거 금과 같이 화폐의 가치를 지탱하는 Standard가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금이 돈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된 것은 결국 그 수량의 한계 때문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트코인은 금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물질인데 자체적 가치가 없는 비트코인을 금과 견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금이 화폐로서 사용이 중단된 것은 결코 케인스 때문이 아니라, 금의 한정된 수량으로는 팽창하는 경제를 감당할 수 없음에 따라 국가의 채무증권인 오늘 날의 지폐시스템으로 전환되었음을 인식해야 한다. 돈은 결코 사람들의 약속만으로 가치를 갖지 않는다. 돈 그 자체가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약속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이 만든 것은 언제든 사람이 없앨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도 결국 사람이 만든 인위적 상징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