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경찰에 한 여자 아이의 전화가 걸려온다. 강간을 당했다는 신고 전화. 즉각적인 경찰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물증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데 강간을 당했다는 여자아이의 태도가 이상하다. 강간을 당했다는 아이 치고는 뭔가 침착하고 활달하다. 진술을 반복하게 했더니 진술의 일부 부분에서 불일치가 발생한다. 게다가 아이의 위탁모라는 사람은 아이가 평소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 있었다고 한다. 아이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 신고를 한 게 아닌지 의심간다고 한다.
과연 이러한 상황에서 당신이 형사라면 어떤 결론을 내릴 것인가? 한 여자 아이의 철 없는 장난이라고 단정 짓고, 아이의 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마무리할 것인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간이 일어난 것이라 보고 계속 수사할 것인가.
이 책의 주인공인 마리는 바로 그 여자아이고, 이 여자아이를 처음 담당한 형사는 마리의 신고를 거짓으로 믿고 결국 마리에게 신고가 거짓이라는 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종결시킨다.
그로부터 몇년 후 다른 지역에서 연쇄 강간 사건이 벌어지고, 사건을 맡은 두 여자 형사의 끈질긴 노력끝에 범인을 검거하게 된다. 범인의 컴퓨터에는 그 동안 범인이 강간하며 촬영한 여성들의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엔 마리도 있었다.
이 책은 단순히 그렇게 하여 마리가 누명이 벗겨지고 행복하게 잘 살았다라는 스토리가 아니다. 강간당한 여성의 심리는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그 트라우마가 나타나는 방식은 놀랍게도 일정하지 않고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사태를 맞이한 여성들의 표준적인 모습을 머릿속에 상정하고 바라보게 피해자를 바라보게 된다. 피해자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적극적인 수사 노력 없이 단순히 사소한 몇가지 부분을(그것도 정확한 근거 없이) 토대로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