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입니까?", "그거 팩트입니까?"라며 윤종신씨가 하는 건강보조식품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꼬꼬마 시절 영어 단어를 외우고 다닐때도 진실이나 사실 같은 단어는 "Truth" 정도로 쓰고 다녔었다. 그런데 특정시점(추측컨대 선거 운동 즈음에 난무하는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해 근거 없는 비방들이 난무하던 시점)에 "팩트체크"라며 돌연 우리 언어사회에 "팩트"는 일상에 스며 들기 시작했다.
근데 아니 이게 무언가? "팩트, 팩트"거리는 와중에 이 책의 이름은 "팩트풀니스"라고 한다. 언젠가 이 책을 봤을때 심산이 꼬인 내 입장에서 봤을때는 "유행어에 편승해서 출판사들이 이름을 멋대로 바꾼 책인가 보군"하며 주관적으로 저질 자기계발서와 동급으로 취급하고 더 이상의 시선을 주지 않았었다. 그러던 어느날 사무실에서 2년 후배인 친구가 책장에 이 책을 꽂아 놓고 있었던 이 "팩트풀니스"를 보고 당시 팀장님도 이 책을 극찬하셨다. "읽어 보니까 많은게 새롭게 느껴지더라.", "근데 진짜 그런가?", "그 말이 사실일까?"하는 말 등 꽤 둘 간의 대화가 이어졌던 걸로 기억한다. 여전히 오만한 나는 '저런 자기계발서나 읽고 사는구나'라며 선구자인 두 분을 평가절하 한 적이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이 책의 이름을 보고선 그제서야 '내가 무언가 오해를 한게 아닌가?'하며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고, 이제서야 나는 이 책을 정독하였다.
우선 책의 제목을 우리나라말로 번역하자면 "사실충실성"이라고 한단다. 우리는 그동안 살면서 얼마나 사실에 기반하면서 살았고 얼마나 사실 여부를 확인했고, 사실의 다른 면은 없는지, 내가 사실을 정확하게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인지, 곡해하고 있는 것인지 충실했었는지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이 책의 이름으로선 이보다 더 나은 단어는 없으리라고 본다. 입시 전까지는 나도 여느 친구들 그리고 현재 자라고 있는 학생들 못지 않게 사교육을 겪어 봤으나, 인생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NIE(Newspaper In Education)였다. 천둥벌거숭이었던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 단어의 사전적인 정의는 무엇일까?"라며 메타 인지 능력을 상승 시키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 NIE 교육을 들먹이는 이유가 바로 그에 못지 않은 이 책의 임팩트를 말하기 위함이다. 대뜸 이 책은 짧은 문장과 함께 3개의 선택지를 내밀며 맞춰보라고 한다. '전세계 인구 중 몇 퍼센트가 전력공급을 받고 있는가?', '소득 1단계 인원들의 비중은 향후 10년 뒤에 어떻게 변할 것인가?' 등등 부록 편에 나라별 정답률을 봤을때 한국이 정답률이 높은 문제는 나도 거진 맞췄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한스 로슬링의 왜 당신들이 침팬지(랜덤하게 선택한다는 의미며 선택지가 3개로, 정답률이 33% 미만이라는 것에 대한 해학적인 표현)보다 더 정답을 못 맞추는가에 대해서 통계자료에 기반한 "팩트"로 얼얼하게 뒷통수를 때리고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처음엔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그리고 침팬지를 빗대어 각종 지식인들에 대해 도발을 하는 모습에 다소 불쾌한 감정을 느낀 것도 있었으나 11장에 걸친 사실의 나열과 사실을 기반으로 한 원인에 대한 파악, 개선을 하기 위한 인류의 대처방안 등을 아주 스무스하게 서술해 나간다. 기억에 남는 사실과 주장 중 총 5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우리는 빈곤 포르노에 노출되어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국가들이 몇 년이 지나더래도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관념에 빠졌으나 실상은 매년 점차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 글만 잘 쓰는 줄 알았던 작가가 에볼라 바이러스와 싸우기도 했고, 전염병에 대해 원인을 파악하고 그곳의 주민들을 달래는 과정에서 이 '사실충실성'에 대해 다시금 깨닫던 경험 하나, 전염병에 대처하기 위해 봉쇄를 건의 했다가 본의 아니게 모자가 사망했던 사건으로 인해 크게 각성했던 사건 하나, 그리고 돌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거북이였고 알고보면 조금씩, 눈치 채지 못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내용 등 사실충실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삽화들 하나. 그리고 이 책을 작성하기 위해 참조한 수 많은 출처들 하나. 이 다섯가지만 감안해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며 나의 세계관을 크게 바꿔놓은 훌륭한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