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8일 결혼을 하면서, 하객들에게 공표한 아내와의 약속이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아내와 해외여행을 다니겠습니다.' 첫 해에는 신혼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성공적으로 약속을 완수하였으나, 그 다음해인 올해에는 그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작고 귀여운 아들이 태어난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사실상 해외여행이 전면중단된 것이 그 까닭이다.
그런데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각하면 나는 왜 '1년에 한 번씩 아내와 해외여행을 가겠다.'라는 공약을 내세우게 된 것일까? 태어나지 얼마 안된 아기 시절에는 모든 것들이 새로운 것들이고 모든 풍광이 본 적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커가면서 매일 보는 아빠와 엄마처럼 우리는 점점 많은 것들에 익숙해져 간다. 아이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부모는 자식을 데리고 집을 떠나 새로운 것들을 경험 시켜준다. 실제로 나도 그랬다. 지금도 많이 기억에 남았던 계곡으로의 여행 절도 가보고 등산도 해보고 민박집에서 잠도 자보고.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첫 번째는 이처럼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달력에 갇혀 정해진 스케줄 안에서 반복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떠서 씻고, 직장으로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해서 출근하고, 매일 같이 보게 되는 직장동료들과 큰 변함 없는 일을 완수하고 집으로 돌아오고 가족과 함께 식사, 저녁에 여가 시간을 보내다가 취침. 그리고 그 생활 패턴을 반복하게 된다. 이러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그리고 이 책에서 말하듯 어디서든 들려오던 모국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가 가득한 공항. 거기서 그들만의 문화, 음식, 건축물, 세계유산들을 보고 있노라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 이러한 여행을 다녀오게 되면서 왜 그들은 이 방향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나? 를 생각하게 되면서 갇혀만 있던 나의 세계관이 아주 조금씩 확장되어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일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의 새로운 경험과 일탈이 어느 정도 맥락을 같이 할 수 있겠다만. 때는 대학교 4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방학이었다. 호기롭게 혼자서 홍콩으로 여행을 떠났다.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믿을건 내 지갑속의 돈과 영어회화 실력 뿐이었다.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는 정말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고, 내가 누군지 신경쓰는 사람도 없었으며 휴대폰 마저 데이터를 전부 꺼놨기 때문에 연락 올 일도 하나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행동했다. 사전에 가보고 싶어서 정해놓은 장소로 가서 케이블카를 타기도 하고, 불상을 보러 계단을 오르기도 하고, 식당에 가면 내가 먹고 싶은대로 주문해서 먹고. 때로는 호텔에 가서 내가 하고 싶은대로 먹고, 자고, 나가지도 않고 안에서 노트북으로 논다던가. 미드웨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면서 맥주병을 들고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한국에서는 누군가 나를 알아볼까?라면서 소극적으로 행동하던것과 달리 일상에서 벗어나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행했다. (물론, 법에 저촉될만한 행동들은 일체하지 않았다.) 가령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일탈이 하나 있었는데. 트램(노면전차)을 타고 무작정 끝까지 타고 가는 것이다. '이 트램을 타고 가면 끝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라는 호기심으로 혼자 끝까지 타고 떠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책무라는 무거운 옷을 입고 생활하다가 마치 나체로 태어나 세상에 던져진 아기처럼 내가 하고 싶은 행동들을 맘껏 행한 것이다. 그렇게 일상에서 벗어나 행동을 하다가 다시 돌아오면 그때의 경험은 다시 일상을 산다고 할지라도 예전보다는 더 가볍게 살게 되는 것만 같다.
나의 여행의 이유 세 번째는 '여행의 기대감'이다. 앞서 말한 두 가지의 '새로운 경험', '일탈'을 기대하다 보면 달력을 보면서 그 날만을 꼽으며 기대하게 되는 점이다. 그 기대감이 일상의 또다른 원동력이 되어준다.
이 책에서 말하는 여행의 이유는 생각보다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여행의 이유를 갖고 있겠거니 하였지만, 김영하 작가 특유의 테이스트를 갖춘 책으로서 본인의 여행의 이유를 단조로운 어조로 잘 풀어쓴 산문이었다. 책을 읽게 되면서 나의 여행의 이유가 어떤 것인지, 이 코로나19 사태가 끝나게 되면 어디로 여행을 떠날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