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최고의 과학적 발견을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갈릴레이의 지동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빅뱅 이론의 입증, 힉스 입자의 발견 등 인간의 삶과 역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수 많은 발견 중 굳이 하나를 꼽으라면 종의 기원으로부터 시작된 진화론의 등장을 꼽고 싶다. 진화론은 비록 우생학 등으로 악용되어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등의 단초를 제공하기는 하였지만 카톨릭 문화가 지배했던 서구 사회에 인간 중심의 가치관이 확고하게 자리잡게 만듬으로써 20세기 찬란한 과학문명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종의 기원 이후 서구 사회의 큰 반향을 일으키며 논란의 중심이 되었던 진화론은 1970년대 이르러 그 학문적 영역이 생물학적 수준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적 진화를 다루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등장한 학문이 저자 '데이비드 버스' 등 학자로 대표되는 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다. 진화심리학은 기존의 사회심리학이 인간 심리의 현상적 측면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데 비하여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근원을 진화의 측면에서 고찰하는 학문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10대 남성들은 같은 나이 대의 여성들에 비하여 성장의 속도도 빠르고 훨씬 공격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그에 따라 사고사로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기존 사회심리학에서는 단순히 테스테로돈이라는 호르몬이 그 시기의 남성에게 상대적으로 많이 분비되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것에 비하여 진화심리학에서는 현생 인류의 조상이 등장한 이후 수백만년 동안 이루어진 진화의 결과임을 설명한다. 즉 유전자의 운반기계인 인간 개체의 남성이 자신의 유전자를 효율적으로 전달할 배우자를 찾는 과정에서 육체적 강인함과 생존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충동적으로 행동했고 이를 통하여 여성에게 배우자로 선택되었고 그러한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자연선택 됨으로써 현존 남성의 심리적 기제가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은 이제 등장한지 50여년 밖에 안된 학문이지만 조만간 심리학의 전 분야는 결국 진화심리학으로 통폐합될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차피 인간의 심리라는 것이 수백만년간의 진화와 생존의 과정을 거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진화적 측면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내밀한 심리적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혐오라는 감정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의 예를 들어보자.
초기 인류는 씨족 또는 부족 단위로 군집해서 생활을 했고 다른 씨족이나 부족의 침입은 그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한 위험요인 중 하나였다. 그 침입의 형태가 물리력을 동반한 전쟁의 양태를 띠지 않더라도 이방인이 집단 내에 침입하여 해당 집단에게는 면역체계가 없는 전염병을 옮김으로써 집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상례였다. 스페인 침입자들이 마야나 아즈텍 원주민들은 면역체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천연두균을 전파함으로써 원주민의 대량 사망을 유발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방인이 침입함으로써 전염병을 옮길 수 있다는 위험에 대응하여 이방인을 적대시하고 배척하였던 유전자가 자연선택됨으로써 자기 집단과는 다른 집단을 혐오하는 감정이 생겼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의 설명이다. 외국인 또는 다름 종교에 대한 혐오을 '톨레랑스'정도의 사회적 성숙도로 설명하는 기존의 심리학에 비하여 명확한 설명이다.
왜 남자들은 어리고 예쁜 여자를 좋아할까? 또 왜 남자들은 결혼 상대로는 현숙하고 정조관념이 강한 여자를 좋아하는 반면 하룻밤 일탈의 대상으로는 성적으로 헤프더라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걸까? 반대로 왜 여자들은 남자들의 외모보다는 경제적이나 사회적 지위 또는 헌신적인 측면에 가중치를 두는걸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들어보자.
남성이 정자는 여성의 난자에 비하여 그 수도 월등히 많고 훨씬 적은 노력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여성은 난자를 수정시킨 뒤 10개월이라는 임신과 출산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것에 비하여 남성은 일시에 정자를 몸에서 배출하여 여성의 난자와 수정에 성공하기만 하면 유전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수정체를 몸 속에서 키울 여성의 건강이 유전의 성공을 가르는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어릴수록 임신할 수 있는 기간이 늘어날 것이고 예쁠수록 건강하다는 신호일 것이다. 남성 입장에서는 임신과 출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따라서 짝짓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을 선호하며 이때에는 여성의 정조관념 따위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결혼의 경우는 다르다. 결혼한 상대가 부정을 저지를 경우 다른 남성의 자식을 부양하는 어리석음을 범할 가능성이 놓아진다. 결혼 상대로는 현숙하고 정조관념이 강한 여자를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 및 이후 양육의 과정에 있어서 자신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부양할 상대방이 필요하다. 어떤 남성이 신체가 건강하고 외모가 훌륭해도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면 그를 배우자로 선택한 여성과 그 사이에서 출생한 아이의 생존은 크게 위협 받을 것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경제적이나 사회적 지위를 배우자를 고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아울러 헌신적인 측면에도 가중치를 두어야만 양육 과정에서 다른 여자에게 눈길을 돌리는 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 않을까?
진화의 관점에서 번식에 비해 생존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무한증식이 가능한 원핵세포로부터 다세포생물로 진화한 이후 생명체는 고유형질의 유전이라는 방식을 통해 그 영속성을 유지하여 왔고 이러한 진화의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심리적 기제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남성의 바람기나 폭력과 같은 우리의 본능적인 요소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심리 기제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이라는 인간만의 독특한 무기가 있지 않은가? 나만의 생존보다는 공존을 위한 공감능력의 확산이 필요한 시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