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시대는 한마디로 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시기이다. 신의 이해를 위해 자기의 철학을 발전시킨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를 통해 신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이 철학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배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성을 통해 신을 이해하려 노력했던 인물이다.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선과 악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였고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특징이 있었다. 그는 로마에서 회의주의 철학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는 인간의 이성 능력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회의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교 신학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한 측면이 있었다. 신의 계시를 깨닫는다는 건 어쩌면 초이성적 경험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어느날 아우구스티누스는 자기를 향한 신의 계시가 담긴 특별한 음성을 듣는다. 그 일을 계기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육신의 쾌락에 젖어 살았던 과거를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머리로만 진리를 찾으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신의 권능에 귀의하기로 결심했다. 그후 히포의 주교가 된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론 집필을 필두로 써 내려간 통찰과 사유의 결과물은 중세 유럽 사상의 근간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기독교 신학의 중요한 지침서가 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겪은 인생역정을 철학의 대상으로 삼앗다는 점과 신플라톤주의자였던 암브로시우스의 영향으로 플라톤철학의 골자를 신학에 차용했다는 점이다. 암브로시우스는 이성으로 신을 이해하려고 했던 이를테면 철학적 신학자였다. 아우구스티누스 역시 신앙과 철학을 통합해 올바른 신학의 체계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진리에 이르는 방법으로 그가 제시한 것은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초월적 존재인 신을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진지한 성찰을 통해 인간의 내면에 신이 남긴 진리의 징표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본래 신은 만물을 선하게 창조했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로 악에 빠지게 되었다는 하지만 신의 예정된 은혜로 진리를 추구하고 염원하는 인간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는 결국 선악의 문제를 기독교 신앙과 철학의 절충으로 해결하였다. 진리를 갈망하지만 도달할 수 없는 딜레마, 죄악으로 인해 겪게 되는 부조화는 행복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그렇다면 결코 변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행복을 얻는 방법은 무엇을까. 그는 예정된 신의 섭리를 따라 믿음으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인간은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면서도 끝없는 뭔가를 추구하는데, 신의 은총으로 진리를 발견하고, 부조화 상태에서 벗어나 완전한 행복을 얻는다. 개인적인 경험을 내면화하고, 그 사유의 흐름을 철학의 소재로 삼아 중세의 보편적 기독교 사상을 체계화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중세 유럽 사상사에서 신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중세 후반 유럽의 주된 그리스도교의 철학 사상을 일컬어 스콜라주의라고 한다. 초기의 교부철학이 플라톤 사상과 신앙의 절충이었던 것과 달리 스콜라주의자들은 좀 더 현실적 경험과 논리를 중시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가장 걸출한 스콜라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초월적 신앙과 자연적 이성을 종합하여 그리스도교의 철학을 집대성하였다. 플라톤철학이 일찍이 중세 신학과 잘 융합했던 것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오랫동안 서유럽에 알려지지 않았다. 십자군 원정을 통해 유럽에 다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유럽의 정신세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은 초월적 신을 설명하는 데에 유용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모든 면에서 현실 세계의 경험과 상식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자 다급해진 건 기독교 교회엿다. 안전하게 지켜오던 기독교의 세계관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에 적대적이엇던 이교도들의 문화와 지적 수준이 더 우월했다는 사실도 위기의식을 부추겼다. 그 즈음 대중사회의 지성도 중세 초기와 달리 많이 발달했기 때문에 교회도 더 이상 시대의 변화를 역행하기는 어려웠다. 토마스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그는 영면한 머리와 투철한 사명감, 그리고 거대한 체구가 있었다. 토마스는 기독교 사상의 재건을 위해 이성적인 논리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겟다는 지적 프로젝트를 가동시켰다. 바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활용한 것이다. 토마스는 일단 신학과 철학을 구별하였다. 더 정확하게는 신학에서의 이성과 철학에서 사용하는 이성을 구분한 것이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체계를 도입하여 다덧단계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였다. 첫 번째, 부동의 동자로 증명 모든 사물은 움직이는데 긍국적으로는 스스로는 안 움직이면서도 제일 처음 운동을 일으킨 존재가 신이라는 것,두 번째 최초의 원인으로 증명하는 것.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는데 세상에는 분변 변화하고 생겨나는 것들로 넘쳐 나는데 최초의 원이이 없다면 결국 중간 원인도 없다는 것 그러니까 최초의 원인이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 필연성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모든 것들은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모든 우연을 가능케하는 딱 한가지 필연성이 바로 존재하여야 하는데 그게 바로 신이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완전성으로, 다섯 번째는 목적론을 통해 증명하려고 하였다. 스콜라주의 지식의 전당에 몸담았던 토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수세기에 걸쳐 인간의 이성으로 진리를 규명함이 온당한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