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는 재미있고 흡입력 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다. 재밌다. 단문으로 글을 쓰는데 흡입력도 있고 일단 읽는 동안 산만해 지지 않도록 하는 영리한 작가다. 말도 잘하는데 글도 잘 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쓴 산문이라고 해서 선택한 책이 '여행의 이유'라는 책이다. 그런데 소설만큼 재밌게 읽어내려 갈 수 있는 책이 아니었고, 다소 산만했다. 그저 읽을거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나 할까? 김작가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개인적인 것들을 쓰는데는 익숙해 있지 않은듯 하다.
나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다. 집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런 사실인식에도 불구하고 고생을 사서 할 만큼 무모하지도 않다. 작가도 여행은 고생이고, 결국에는 주소지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여행을 하는 이유를 책 전반에 걸쳐 개인적인 경험담을 토대로 써내려 간다. 작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를 통해 여행을 떠난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예로들며 여행의 의미를 유추해 내고자 하는 것 같다.
작가는 대학생 시절 운동권이었던 것 같다. 당시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은 천안문사태가 발생하여 사회주의 진영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그런 현실을 운동권 세력에게 보여주고자 운동권 학생에게 중국여행을 보내게 되는데, 작가는 중국에서 만난 대학생이 당시 작가가 가진 무모한 공산세력에 대한 환상을 일소케 하였고, 이후 대학원 진학을 결심케 되고 현재와 같은 작가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한다. 당시 80년대 학번은 무모할 정도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가는 중국여행을 통해 새로운 길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다. 이후에도 작가는 유럽, 미국 등으로 수시로 여행하면서 작가적 상상력을 키워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진 것으로 보인다.
책은 좋은 책 나쁜 책이던 간에 읽는 중에 새롭게 생각하게 해준다. 이 책도 그리 추천할 만한 책은 아니나 그래도 읽으면서 개인적인 상념을 하게 해 주었다. 독서의 장점이다 싶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동시에 나의 과거 경험치를 바탕으로한 잠재된 상념을 부활케 한다.
이 책은 아홉개 글꼭지를 가지고 구성되어 있다. '추방과 멀미'는 중국에 갔다가 비자 준비를 하지 않아 도착 당일 추방당해 귀국해서는 중국여행의 목적이었던 글을 집에서 무사히 잘 마무리했다는 이야기다. '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는 작가가 여행가저 호텔 투숙을 선호한다는 내용이다. 호텔은 누군가의 조력으로 그날 그날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이 reset되는 매력에 대한 찬사를 보낸다. '오직 현재'는 캄보디아 여행담과 호모 비아토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여행하는 인간, 호모 비아토르',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여행', '그림자를 판 사나이', 'ㅇ폴로 8호에서 보내온 사진', '노바디의 여행', '여행으로 돌아가자' 등은 여행에 대한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기술해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많은 시간을 들려 세계 여러곳에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기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작가의 처지에 한없는 부러움을 갖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이 새삼 부럽단 생각도 들었고, 성공한 작가의 허영에 한 없이 부럽게 된다.
특히, 뉴욕, 캐나다, 유럽에서 장기간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작가는 얼마나 부러운가? 이런 삶의 사치를 누릴 수 있어야 소설을 쓸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김영하라는 작가는 '작별인사', '살인자의 기업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한 권리가 있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등이 있는데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읽은 것 같다. 작가의 소설은 사실 재밌다. 그런데 이번 산문집은 작가 개인적인 이야기가 주를 이루다 보니 애정이 가지 않는다. 읽기는 금방 읽었는데, 책 내용도 읽은 속도 만큼 빠르게 머리에서 사라질 것 같다. 그저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