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된 이유는 김초엽 작가의 전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굉장히 재밌게 봤기 때문이다. 원래 단편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데도 소재가 굉장히 참신했고, 담긴 스토리도 굉장히 신선했기에 이번 연수를 듣기로 결심했음 때, 가장 먼저 고른 책이기도 하다. 읽고 난 지금, 역시는 역시였다고 말하고 싶다.
“지구 끝의 온실”은 백여년 뒤의 지구가 배경이다. 다만 지금의 지구와는 다른 점은, 내성이 있는 존재 외에 살아있는 존재는 순식간에 죽음에 이루게 하는 “더스트”로 인해 멸망 위기에 놓여있다가 간신히 재건된 지구라는 점이다. 더스트 연구센터의 막내 연구원인 아영과 더스트에 내성이 없는 존재도 살아갈 수 있는 프림빌리지를 찾아온 나오미와 아미라, 그리고 지수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더스트”의 위기에 빠진 지구를 구하는 것은 “모습하나”라는 식물이고, 이 식물들을 널리 퍼트리는 사람들이었다라는 큰 스토리 줄기가 3장에 걸쳐 구성되어 있어 어찌보면 각각의 이야기 같으나 결국에는 유기적으로 연결된다는 전개 방식도 굉장히 독특했다. 또한, 보통의 재난영화나 SF장르들은 어떤 이유에 의해 세상이 멸망하고 이를 어떻게 극복해나가는 지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던 반면 이미 평화로운 시기가 도래했고, 이 시기가 오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라는 작가의 말에서도 작가가 어떤 내용을 쓰고 싶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책 표지 뒷면에 쓰여진 작가의 말을 보고 사실 큰 울림은 없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작가가 어떤 마음을 쓰고 싶었는지, 우리가 망가트리고 되돌릴 수 없지만 계속 살아가야하는 지구에 대해서 쓴 책이란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ESG와 같이 환경에 대한 관심과 경각심이 높아지는 이 시기에 이 책은 이 지구에 꼭 필요한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이 극심했던 2020년 그리고 2021년,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인간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자, 오히려 자연이 되살아난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도 났다. 어쩌면 인간은 지구에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 잠시 머무를 수 있도록 허락한 존재일 뿐이라는 생각 또한 들었다.
이러한 스토리 외에도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친절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건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전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도 느꼈던 작가의 특징인 것 같다. SF소설인 만큼 배경이 낯설고, 작가가 공대생인만큼 배경에 나오는 지식들이 사뭇 어려울 수 있고 쉽게 접할 수 없는 개념들임에도 작가는 이를 친절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이해를 못하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이해해가야하는 구조인데, 나는 이 점이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예를 들어 “더스트” “호커바”와 같은 단어는 작가가 만들어 낸 허구의 단어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설명해주는 대신, 주인공들의 대화와 행동을 통해서 “지구를 멸망하도록 만들었던 원인”, “미래에서 타고 다니는 운송수단”이라는 것을 독자들이 스스로 알게끔 한다.
이러한 작가의 특징은 책을 펼친 처음에는 조금 책장을 넘기는 게 힘들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 속의 세계를 작가를 통해서 전달받는 게 아니라 직접 그 소설 속 세계와 연결된 느낌이 들게끔 한다. 그래서 작가의 전 작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과 “지구 끝의 온실”이 낯설고 신선한 주제임에도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설명이 필요한 “손님”이 아니라, 직접 이 세계를 내가 경험하는 “당사자”가 될 수 있게끔 만들어줬던 것 같다.
김초엽 작가가 담아내는 스토리와 독자를 직접 세계로 초대하는 듯한 특징이 나로 하여금 그녀의 작품을 계속 기다리게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