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오스트리아 국민은 대부분 독일어를 쓰고 카톨릭을 믿는다.
9세기에 프랑크왕국의 단일 행정구역이 되면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와는 다른 국가로 발전하게 되었다.
12세기 들어 상업이 발전하고 십자군의 집결지가 되면서 국제도시로 발돋음했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터를 잡고 신성로마제국 황제 직위를 차지한 16세기 이후 중요한 도시로 발돋움 했다.
2021년기준 1인당 국민소득 5만달러를 넘는 오스트리아로 금융,유통,의료,복지 등 서비스 산업 선진국이다.
게다가 산과 호수, 도시의 화려한 경관, 높은 수준의 음악과 예술로 세계인을 끌어들이는 관광대국이다.
그라벤은 도랑, 개천, 참호를 가리키는 명사인데, 동사로 쓰면 우물이나 굴을 '판다'라는 뜻이다. 그라벤 한가운데 선 '페스트조일레(페스트기둥)'은 조형물로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중세 빈의 권력자들과 시민들이 두려워한 것은 외부 침략만이 아니라 전염병이 더 무서웠다.
대성벽이 둘러싼 도심의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다. 생활하수가 그대로 흘러드는 강물을 식수로 썼다.
페스트가 창궐할 수 있는 알맞은 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었다.
병에 걸려 죽은 이들의 시신을 방치한 탓에 페스트는 순식간에 도시 전체에 퍼졌다. 1년정도 지속된 대유행기간 동안 상주인구의 절반인 십만명이 죽었다. 그러나 굴복하거나 포기하진않고 페스트에 맞선 이들이 있었다. 의사와 카톨릭 봉사단체 회원들이다. 그들은 시신을 치우고 거리를 청소하고 격리병원을 만들어 환자를 치료했다. 프라하로 피신했다가 대유행이 지나간 후에 돌아온 레오폴트1세는 희생자를 애도하고 페스트가 다시는 찾아들지 않기를 신에게 빌면서, 시신을 무더기로 던져 넣었던 그라벤에 '성삼위일체'를 조각한 기둥 형태의 조형물을 세웠다고 한다. 그때 참 힘들었기에 코로나로 힘든 지금 의료계에 계신분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헝가리는 국토가 대한민국보다 조금 작고 인구는 서울시와 비슷하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슬로베니아와 세르비아에 둘어써인 완벽한 내륙의 평원이다. 언드라시 거리는 부다페스트의 샹제리제라 할 수 있다. 언드라시 거리 양편으로 대사관이 즐비하고 한국대사관도 거기 있다.
딱 하루만 부다페스트를 본다면 아침 일찍 영웅광장에서 출발해 언드라시 거리와 바실리카를 본 다음 세체니 다리를 도보로 건너 푸니쿨라를 타고 부다 왕국지구에 들르고 해진후에 유람선을 타는게 좋다.
그리고 부다페스트 도나우 야경감상은 최선의 선택이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 한복판 언덕에 있어서 첨탑이 시내 어디서나 보일뿐 아니라 여행안내서에 나오는 명소들이 근처에 몰려 있다. 외관은 고딕양식이고 내부는 화려한 바로크 스타일로 치장한 팀 성당은 프라하의 자랑이다.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이 붙은 두 첨탑 사이의 황금 후관을 두른 성모상이 그랬다. '30년전쟁'으로 권력을 탈환한 카톨릭 세려이 원래 거기 있었던 보헤미아왕의 조각상과 황금 성배를 녹여 성모상을 만들었다. 성에서 내려다본 프라하의 도심은 너무 예쁘다. 카렐교는 14세기 후반 50년 동안 공사를 해서 만들었다는 이 보행자 전용 다리는 평지인 구시가와 비탈인 프라하성 일대를 연결했다. 카렐교는 다리와 조각상도 구경거리이지만 시내 구간의 강과 건너편 언덕의 프라하성 일대를 원경으로 보기에 좋았다.
독일 드레스덴
드레스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드레스덴 공대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이라는 강연을 했을때 이름을 처음들었다.
드레스덴의 랜드마크 1번인 성모교회는 바로크스타일의 루터파 교회로 첨탑이 하나인 세계 최대의 사암 건축물이다.
성모교회 앞 광장을 보고있는 마틴 루터 동상이 있다. 부패한 카톨릭교회에 대한 루터의 공개 비판은 종교개혁 운동과 농민전쟁을 역사의 무대에 불러올렸고 기독교와 유럽사회를 크게 바꾸었다. 종교개혁 운동의 정신을 구현하는 교회를 지었다. 계율을 어기면 벌을 주는 신이 아니라 그런 신을 믿는 이들에게 안식과 평화를 주는 교회를 지은것이다.
성모교회 벽면의 검은 점은 폭격을 맞은 돌이다. 고증에 필요한 자료가 다 타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거의 비슷하게 재현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