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학창시절에 원소 주기열표와 씨름하면서 갖게되는 한 가지씩의 에피소드는 꼭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원소기호는 당시 시험에 시달리고 있던 우리에게는 악마의 저주에 가까운 분야였으니... 나는 고등학교때 문과라 대학입시에 물리나 화학을 선택하지 않아 그런 강박은 없었지만, 학창시절의 왕성한 호기심과 생물관련 연관성 등으로 물질의 기원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었으며 그런 관계로 이과생 못지 않게 원소 주기열표를 줄줄 외웠던 기억이 새롭다. 통신연수 책을 선정하면서 이 책을 주저없이 선택한 것도 그러한 추억에 이끌렸는지 모른다.
주기율표는 과학이다. 그러나 그 이름들은 과학적이지 않는 시대에 시작되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학생들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 화학지식을 전달하는데 힘쓰는 과학자이다. 화학자를 '현대의 연금술사'라고 부르는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까지 알려진 주기율표속 118개 원소들의 이름에 대한 기원을 찾아간다. 물질 하나 하나가 가진 이름과 그 변화들을 살펴보면, 그 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물질을 사용했고 물질의 성질을 인식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에, 그 물질들의 기원에 대해 공부하는 것은 그 본질에 더 가까이 가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책은 화학 원소의 이름이 자리잡는 과정들을 설명하면서 원소의 발견과 전파에 관한 당시의 사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하게 느껴지는 원소의 이름에 대해 처음 그 이름이 생겨날 때의 사연과 이후의 변천 과정 및 그러한 변천을 이끌어낸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저자는 마치 당시에 시대로 가서 설명하듯 생동감있게 들려준다.
이 책은 크게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천체'에서는 연금술과 천문학 사이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인류에게 가장 오래전에 알려진 물질인 금, 은, 수은, 구리, 철, 납, 주석이라는 7가지 금속과 태양, 달, 수성, 금성, 화성, 토성, 목성의 연관성에서 기원한 원소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장 '도깨비와 악마'에서는 도깨비나 악마로 비유되었던 안티모니, 비소, 비스무트, 코발트, 아연들의 이름에 대해 다루며, 3장 '불과 유황'에서는 지옥으로 대변되는 화산 등 불타는 영역에서 온 황과 인의 발견부터 원소로 정리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4장 'H2O냐 O2H냐?'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4원소론 이후 공기가 더 많은 기체로 구성되었으며 물을 더 많은 원소로 분해 또는 기본적인 요소들을 합성해서 만들 수 있다는 것 등을 발견하게 되는 등의 과정에서 산소, 수소의 이름과 관련된 기원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산소와 수소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는 주장도 한다. 5장 '재와 알칼리'에서는 나트륨의 발견과 알칼리성 원소, 전기분해 및 화학의 역사에서 원소기호의 등장과 원소의 분류가 시도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6장 '자철석과 토류'에서는 크론스테트로부터 기원한 토류의 분류, 천연자석과 이들로부터 연유한 마그네슘, 납, 흑연, 알루미늄 등의 원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7장 '염을 만드는 것'에서는 주기율표 족들 중 끝에서 두 번째인 할로겐족에 대해 설명하면서 특히 염소와 플루오린의 발견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8장 '바로 코 밑에 있는 원소들'에서는 대기를 이루는 기체를 연구하다 분광기 스펙트럼을 통해 우연히 발견된 주기율표의 마직막 족한 속한 원소들, 즉 헬륨, 아르곤 등 비활성기체라 부르는 원소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9장 '불안정한 영역'에서는 19세기말 우연히 발견된 방사능 현상과 이로부터 다수의 방사능 원소와 화학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합성원소의 발견 등을 통해 현재 사용되고 있는 118개의 원소 주기율표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이렇게 9장의 설명을 마치면서 별도의 결론없이 끝이 난다. 저자가 의도한 바가 현재 완성된 원소 주기율표를 중심으로 그 속에 자리한 118개의 원소의 유래와 이름, 이와 연관된 다양한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었으며, 또한 향후 과학의 발전에 합성기술의 진전으로 새로운 원소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기에 별도의 결론은 의미없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세상을 이루고 있는 재료가 화학 원소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런 과학의 시각이 탄생한 과정들에 있었던 사회의 문화를 잘 보여준다. 이름의 기원을 찾아가는 책인 만큼 여러 나라 언어에 대한 지식과 역사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들어 있다. 덕분에 어디서도 접하기 힘들었던 과학과 세상을 보는 색다른 관점을 얻을 수 있으며, 과학 발전의 초창기부터 과거 사람들이 갖고 있던 주술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믿음이 어떻게 근대의 과학으로 바뀌어 왔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 수 많은 '우연'의 도움이 작용했던 것도 포함하면서 또한 그러한 '우연'도 결코 게으름의 결과가 아닌 새로움을 추구한 호기심과 노력의 결과임을 보고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