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이 종묘를 보고 감동한 것은) 파르테논 같은 외관의 장중함이었을 게다. 그러나 종묘 정전의 본질은 정전 자체의 시각적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바로 정전 앞의 비운 공간이 주는 비물질의 아름다움에 있다. 굳이 비교하자면 가없이 넓은 사막의 고요나 천지창조 전의 침묵과 비교해야 한다. <오래된 것들은 아름답다> 승효상의 책 인용
이처럼 건축가가 건축을 보는 눈은 미술사가가 보지 못한 건축 본질에 관한 것을 건드린다.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내가 절감하게 된 것 중 하나는 평범한 작품은 그 작품의 유래를 따지게 하지만, 명작은 거기서 받은 감동의 근원이 무엇인가 하는, 예술의 본질의 물음에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이런 추상적이면서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이런 표현이 좋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예술빠인가 보다. 이 구절 읽으면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소설이 떠올랐다. 그책의 내용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예술에 대해 설명하하려고 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인 건지 스트릭랜드가 그림에 빠져 미친듯이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어렴풋이 느꼈다. 그리고 예술 작품 그 자체가 가진 아우라가 어떤 것인지도 알 거 같았다. 명작은 그것이 원래 걸려 있었던 자리 그대로 감상해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이 구절도 달과 6펜스에서 작가가 스트릭랜드 그림에서 느낀 것을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명작은 설명이 필요 없다. 물론 설명을 들으면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겠지만... 지금 읽고 있는 <서양 미술사> 그래서 초반 읽는 중인데도 넘 설렌다!
종묘 건축의 미학 - 100미터가 넘는 맞배지붕이 20개의 둥근 기둥에 의지하여 대지에 낮게 내려앉아 불가사의할 정도로 침묵이 감도는 공간을 보여준다는 점에 정전 건축미의 핵심이 있다.
궁궐 건축에 대한 정도전의 이런 정신은 삼국시대부터 내려오던 우리 궁궐의 미학이다. 일찍이 김부식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온조왕 15년(기원전 4)조에서 백제의 궁궐 건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한 바 있다.
새로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지 않았다.
그러고보면 '검이불루 화이불치'의 아름다움은 궁궐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백제의 미학이자 조선왕조의 미학이며 한국인의 미학이다. 조선시대 선비문화를 상징하는 사랑방 가구를 설명하는 데 '검이불루'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없고, 규방문화를 상징하는 여인네의 장신구를 설명하는 데 '화이불치'보다 더 좋은 표현이 없다. 모름지기 우리의 DNA 속에 들어 있는 이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계속 계승하고 발전시켜 일상에서 간직해야 할 자랑스러운 한국인의 미학이다.
-역시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사람인가보다. 이 구절 읽고 참 어깨가 으쓱했다. 과하게 화려한 유럽이나 미국의 사치품들이 마냥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 것도 이 DNA 때문인가? 했다. 얼마전 다녀온 종로 서울 공예박물관에 전시된 대부분의 공예품들이 이런 미의식을 보여줬다. 특히나 공예품은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 실용성까지 더해진 것인데. 화이불치의 공예품들 보면서 와~ 이거 하나 만들면서 이렇게 사치를 부릴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더랬다. 근데 한 번 만들어 그걸 평생 쓴다는 생각을 하면 그정도 사치는 오히려 검소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 사진 찍기 좋아하는 내가 새겨야할 미의식이라는 생각도 했다. 사진 찍을 때 항상 생각하기. 검이불루 화이불치
어차고로 변한 빈청 / 그러고 보면 사람과 마찬가지로 땅에도 팔자가 있나 보다. 대신들과 외국사신들이 대기하던 빈청이 자동차가 대기하고 있는 어차고가 되고, 지금은 관람객들이 쉬어가는 대기소가 되었으니 말이다.
화계는 우리나라 건축과 조원의 독특한 형식이자 큰 자랑이다. 산자락을 등지고 집을 앉히다보면 건물 뒤쪽은 자연히 비탈로 남는데, 여기에 꽃계단을 만들어 사태도 막고 꽃밭도 가꾼 슬기롭고도 자연스러운 정원 형식이다. 평시에 집을 지으면 일부러 만들기 전에는 화계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중국과 일본의 조원엔 화계라는 개념이 없다. 건축가 민혁식의 말대로 화계는 땅이 시키는 대로 꾸미면서 얻어낸 우리나라 고유의 꽃밭이다.
-몇년 전 일본 유명 관광지 정원(엄청나게 큰 공원인데 일본에선 정원이라고 부름)을 산책했었다. 그때 느꼈던 묘한 이질감이 이런게 아닐까 싶다. 엄청난 규모의 공원을 마치 정원처럼 잘 가꾸어 놔서 뭔가 깔끔한 느낌은 있는데 자연스러움이 없다고나 할까? 물론 아닌 부분도 있긴 했다. 근데 전체적으로 인공적인 손길이 지나쳐보여서 우리나라 공원에서 느껴지는 그런 편안함이 없었다. 어렴풋이 이유는 알고 있었지만 '화계'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감탄했다. 우리 선조들의 미의식에 말이다. 인위적인건 극도로 싫어하는구만... 것참 사람들... 일본인이 만든 정교한 장인 솜씨에 혀를 내두르다가도 건축이나 이런 공원은 한국 스타일이 좋은걸 보면... 어디서 태어나고 자라는지가 참 중요하긴 하구나 싶다. 내가 보고 자란 것이 그런 것이니 말이다.
이런 내력이 있는 낙선재이기 때문에 궁궐 건물인데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여염집 사랑채 같은 느낌을 준다. 창덕궁의 별격이고 큰 자랑이다. 낙선재가 있음으로 해서 조선시대 왕들이 얼마나 검박했는가를 알 수 있고 민가까지 포함하여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창덕궁에 다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 왕의 검박함에 대해서 이 작가의 이야기만으로는 100프로 믿을 수는 없지만. 조선왕이 건축에 사치를 부릴려면 무한정 부릴 수 있었을 거라는 데는 동의한다. 그럼에도 이런 건물에서 살았다는 건 왕가의 마인드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조선 건축의 모든 것이 창덕궁에 있다...는 이 구절 때문에 창덕궁에 넘 애정이 갔다. 아직 한번도 본적 없는 곳인데도 말이다. 공간감 느끼고 싶네! 더불에 건축 관련 개론서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중국과 일본의 정원도 자연과의 어우러짐을 중시했다. 그런 정원을 원림(園林)이라고 부른다. 원림을 경영하는 데는 울타리 바깥의 자연 경관을 정원으로 끌어드리는 차경(借景)을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그러나 우리 원림에서는 자연 경관을 빌령는 차경 정도가 아니라 자연 경관 자체가 정원의 뼈대를 이룬다. 인공적인 조원이 아니라 자연을 경영하는 것이다. 산자락과 계곡이 즐비한 자연 지형에서 나온 우리만의 독특한 정원 형식이다. 건축가 김봉렬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연을 해석하고 적극적인 경관으로 건축화"한 것이다
존덕정 / 이처럼 아름답고 당다하고 기품있는 정자이기 때문에 인조 때 세워진 이래로 숙종, 영조, 정조, 순종까지 많은 임금이 존덕정에 와서 시와 문장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정조가 지은 <만천명월주인옹 자서>라는 장문의 글이 잔글씨로 새겨져 있어 이 정자의 역사적 주인공이 되었다. '만천명월주인옹'이란 '만 개의 냇물에 비치는 달의 주인'이라는 뜻이고, 정조 자신이 직접 썼다는 의미에서 자서라고 한 것이다.
재위 22년(1798) 정조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인 47세 때 쓴 이 글은 제목만 보면 군주의 초월적이며 절대적인 위상을 강조한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글 내용을 보면 자신이 만천며월의 주인인 근거와 그렇게 때문에 임금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피력해 놓았다.
이번 서울편에서 궁궐의 주인인 왕들의 이야기가 특히 잼있었다. 궁궐은 실제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 이런 곳이군 담에 꼭 여기에 가봐야겠네... 이 정도가 최대치의 감흥이라면 궁궐의 주인인 왕들의 이야기엔 놀란 것이 많았다. 한 나라의 군주로서 업적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면모를 들여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효명세자 이야기도 잼있었는데 정조 임금은 특히나... 내 스탈이네? 전하~~ 만나보고 싶네요! 이 구절 뒷편에 이어진 정조의 문장 일부가 넘 멋져서 반해버렸다. 드라마를 잘 보지도 않고, 특히나 조선왕조 이야기 드라마는 정말이지 한편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데... 정조 이야기 드라마를 정주행?해야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네. 정조와 할아버지 영조, 아버지 사도세자 이야기도 참... 기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