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된 대한민국 평양에 한 소년이 등장하고 그의 아버지는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과학자이다. 나라 어디선가 날마다 정부군이 산악 지역에 계릴라를 소탕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평양과 서울에서도 테러가 잇따르는 등 이미 인간과 ‘인간’을 부정하는 로봇 휴머노이드간 전쟁이 시작된 2,100년에 가까운 미래 이야기다.
작별 인사를 다 읽고 떠오르는 특별한 캐릭터는 주인공 철이보다도 결국 ‘달마’와 ‘선이’가 아닐까 싶다. 작가는 로봇(휴머노이드)도 ‘의식’을 가질수 있을까 혹은 로봇과 인간이 궁극적으로 대결하게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라는 문제에 천착하기보다는 일종의 불교 사상을 접목시킨 ‘달마’라는 로봇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저는 의식을 가진 존재, 특히 고통을 느끼도록 만들어진 존재들, 인간이든 비인간이든 바다의 물고기든 하늘의 새든, 그리고 저를 포함한 모든 휴머노이드들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무 고통도 없었을 테니까요.”
생로병사의 인생은 결국 고통이다라고 말하는 인공지능 로봇 달마는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간을 전멸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려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선이는 주인공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실제 인간 소녀로 죽음을 맞이한 인공지능 로봇, ‘민이’의 부활은 염원하는 캐릭터이다.
“저는 민이가 다시 의식을 회복해서 그러니까 과거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다시 깨어나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생을 살아가다, 누군가로부터 폭력적으로 살해당하거나 하지 않고 자연이 정해진 수명을 다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우주의 일부로 다시 의식과 영성이 없는 존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의식이 있는 존재는 고통뿐이므로 태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달마와 다르게 의식 있는 존재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선이는 주장한다.
인간이 진정 인간다우려면 과연 무엇이 있어야 할까? 인간은 누구나 필멸의 존재다. 우리가 작은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도 생의 유한성이라는 배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일상의 모든 것이 절실하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이지만 우리는 마치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처럼 앞만 보고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다 중년의 나이가 되고 힘든 순간이 닥쳐올 때면 문득 ‘나는 누구일까? 이렇게 계속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머지않아 너는 모든 것을 잊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모두가 너를 잊게 될 것이다."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그러니 헛된 갈망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고 성찰하는 사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다.
거자필반(去者必返), ‘봄꽃이 피는 것을 보고 벌써 작별을 염려할 때, 다정한 것들이 더 이상 오지 않을 날을 떠올릴 때 내가 기계가 아니라 필멸의 존재임을 자각한다. 그럴 때 나의 시간은 과거와 미래에 있지 않고 바로 여기, 현재에 있다. 그렇게 나를 현재로 이끄는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김영하)
요즘 나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다시 보면서 우주와 같이 드넓은 네트워크 안에서 공허하게 떠다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이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강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렇다. 인생은 태어나서 결국 죽음으로 가는 과정이다. 아직 오지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요즘 문득문득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나와 내 주변의 가족들, 동료와 현재에 충실하는 것만이 오히려 미래를 더 잘 준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나의 현재의 삶으로 돌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