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간은 태생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최근 뇌과학자들과 각종 두뇌 관련 협회의 연구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듯이 우리의 생물학적 뇌란 것은 인지적으로 편향되어 있고 속임수에 취약하기에 우리의 주변을 둘러싼 가감 없는 물리적 정보마저 왜곡해서 받아 들인다고 한다. 몇 해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한 장의 원피스 사진이 떠올랐다. 이것은 과연 희색인가 푸른색인가? 보는 사람에 따라 원피스의 색을 다르게 받아 들이고, 더구나 같은 사람이라도 오늘 그 원피스 사진을 볼 때는 흰색인데 내일 다시 보면 푸른색으로 보이는 그 신기한 사진. 이런 물리적 정보마저 이렇게 왜곡해서 받아 들이는 것이 인간인데 하물며 우리가 마주하는 무수한 정보의 편린들과 각종 뉴스들, 통계 수치 등등의 해석에 있어서는 과연 어떠할까?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이유" 이지만 더 정확히는 "오해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해야 타당할 것이다. 정보의 편중과 편향, 사실 그대로의 객관적 정보라 할 지라고 우리 뇌의 편향과 프레임에 의해 왜곡되어 해석되거나 받아들여 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지적 오류를 "Instinct(본능)"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 간극 본능, 부정 본능, 직선 본능, 공포 본능, 크기 본능, 일반화 본능, 운명 본능, 단일관점 본능, 비난 본능, 다급함 본능 - 10가지 꼭지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생물학적 측면에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기에 또는 그러기 쉽다는 측면에서 "본능"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더 정확히는 "프레임"이라는 표현이 맞다고 본다. 본능은 고쳐지기 어려운 것이지만 프레임은 의도적인 노력으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책에 서술되는 본능은 우리가 어떤 현상과 이 사회를 바라보는 세계관의 틀이란 의미에서 기술되기에, 생물학적 용어에 가까운 "본능" 보다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A가 되가도 하고 B가 되기도 하는 "프레임"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물론 그러한 본능(즉, 프레임)이 발현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 책에서는 주로 세상을 더 과장하고 극적으로 표현해서 관심을 끌어야 하는 언론, 환경단체, 활동가들, NGO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자들로 인해 구체적 정보가 뒤틀리고 취사 선택되다 보니 자연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왜곡된 프레임이 형성되고, 그 이후에는 그 프레임에 의해 사실과 정보들을 구조적이고 체계적으로 오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사실 보여지는 것들보다 훨씬 복잡하고 여러 요인들이 얽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세상을 얼마나 단순화 하고 양극단으로 나누어 파악하고 있는가? 특히, 정치인들과 기자들이 몰려있는 여의도에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좌"와 "우", "보수"와 "진보"라는 극단의 이분법으로 걸러지고 덧칠하여 생산되고 있지 않는가? 아울러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또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여러 통계 수치와 그 통계 숫자들이 표현된 그래프들을 마주하지만 과연 그러한 그래프의 형태와 숫자들이 구간별로 또는 시기별로 의미가 다르고 어떤 경우에는 보여지는 대로 해석해서는 절대 그 함의를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까? 저자는 주로 1~4구간으로 기술된 소득 단계의 예를 많이 들고 있지만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통계와 숫자 관련해서는 섣부른 해석은 금물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나온 여러 문장중 "수치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수치만으로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라는 문장에 너무 공감하는 바이다. 물론 이 책의 모든 내용에 동의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저자가 공포 본능을 설명하며 예로 든 테러 관련 위험보다 음주 관련 위험이 더 크다라는 뉘앙스의 설명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할 수 밖에 없었다. 인관간계 해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테러로 사망한 숫자와 음주 관련 사고로 사망한 숫자를 비교해 음주 관련 위험이 더 크다라고 할 수는 없다. 테러 방지에 그만큼 노력과 비용을 투입하기에 결과적으로 그 피해가 적은 것 일수도 있고 더구나 음주와 테러는 그 사회적 함의가 다르지 않은가? 어느 정도 레저로 일상에 흔하게 즐기는 음주와 종교, 빈부격차, 인종간 갈등이 내재되어 있는 "테러"를 그 숫자로 단순 비교한다? 이 책의 전반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사실충실성이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응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부분은 제외하고는 전반적인 내용에 크게 공감하고 내가 어렴풋이 느끼던 바들이 좀 명확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특히, 사회가 복잡화되고 고도화 될수록 지도자 한 명의 영향력은 제한적이고 결국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부분, 그래서 세상사 중요한 이슈는 개인에게 그 죄를 추궁하기 보다는 시스템의 개선에 주목해야 한다는 부분, 또한 그 어떤 것도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부분, 그렇기에 운명론적 시각에서 쉽게 재단하고 포기하기 보다는 비록 사소하고 느린 변화라도 점진적으로 조금씩 쌓아가 큰 변화가 될 수 있다는 부분이 그러했다. 또한, 개인의 프레임을 사실에 충실하게끔 설계하기 위해서 항상 내 생각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고- 사실 애초부터 "내 생각"에 정의는 무엇이고 정말 오리지널 "내 생각"이란 것이 정말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내 생각에 부합하는 사례만을 수집하는 것을 경계하고 나와 반대되는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내 생각의 오류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인류 역사상 사람에 의해 자행된 끔찍한 비극들은 전부 다 단순한 유토피아적 생각으로 끔찍한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 했던 지도자들로부터 발생했다. 따라서 우리는 현실의 복잡함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여러 생각을 섞고 절충해 의사결정하는 훈련을 할 필요도 있다. 책의 제목은 "사실충실성"으로 되어 있지만 결국 이 책은 남들의 시각으로 오염되지 않고 이 세상을 어찌하면 올바르고 정확한 잣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에 대한 책이다. 내 어떤 생각도 정확하거나 100% 맞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내 생각의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데이터를 쌓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내 전문성의 한계를 의심하고 사실과 지식 앞에 겸손하며 남들의 생각마저 이 세계를 이해하는 자원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