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에서 미래학자 후안 엔리케스의 끊임없는 질문을 던진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윤리가 동일한 것인지? 절대적인 윤리의 기준이 있는 것인지? 인간의 설계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와 노예제도와 같은 역사적인 사례, 성소수자나 이민자를 대하는 태도와 같은 현재 진행형의 사례를 들며 질문을 퍼붓고 있다.
책을 보기전에는 도덕 철학에 기반한 사변적인 논리전개를 예상했지만, 미래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저자는 과학기술과 관련한 사실들을 토대로 얘기를 이끌어 간다.
저자에 따르면 과거에 윤리적이라고 믿었던 것,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기술의 영향을 받아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에 대한 태도는 기술 발전에 의한 산업화에 따라 인간 노동을 기계의 생산성이 대체함에 따라 바뀌게 되었다고 본다.
인공자궁이나, 유전자 복제, 유전자 교정 및 개선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린 미래의 관점에서 본다면, 해로울 수 있는 유전자임을 알면서도 현재에 인간 유전자 편집을 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고 질문한다.
그리하여 저자는 급격히 발전하는 기술은 디지털 문신의 예와 같이 우리의 삶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윤리적 행동과 비윤리적 행동을 가르는 기준에 대한 우리의 발상을 바꿀 것으로 본다. 미래 세대는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을 분석하고 판단함으로써 우리의 기준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준을 설정할 것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상대적인 윤리관을 피력하고 있는 듯도 보이지만, 종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가운데, 윤리적 기준이 될만한 것을 제시하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십계명과 신이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모순적 내용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대부분의 종교는 일부 교리(또는 구절)을 편의적으로 적용하여 윤리가 바뀔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오늘날의 종교를 그 종교의 초기 모습과 비교해 본다면 교리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 모든 중요 종교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공통성과 종교다움에 초점을 맞춘다면 종교학자 캐런 앰스트롱이 말한 바 “모든 종교와 윤리, 영적 전통의 중심에는 연민의 원칙이 있고, 그 것은 바로 다른 이들로부터 대접받기를 원하는 그 방식 그대로 항상 다른 이를 대접하라는 것“에 동의할 수 있고, 이를 미래 윤리의 잣대로 삼을 수도 있겠다.
저자는 오늘날 세계에서 디지털 세계에서의 족적이 남김없이 기록되고 마케팅에 이용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가속하는 부의 집중, 의료 보건 체계, 교육의 공정성 붕괴, 일회용품,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범죄자에 대한 태도 등 현실적인 질문을 하면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일부 윤리적 기준의 과대화나, 인간의 탐욕이 원인이라고 본다. 싸고 편한 것을 너무 중시했다던지, 정신병원의 환자에 대한 강압적 태도에 대한 반감이라던지, 성장률과 수익률을 중시하는 제약사의 개발 우선순위, 절차적 정의에 경도된 태도 등이 문제라고 한다.
저자는 볼테르의 말을 빌어 “당신으로 하여금 터무니없는 사실을 믿게 만들 수 있는 이들은 당신으로 하여금 잔혹한 행위를 하게도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과거 세대가 했던 잘못들에 대해선 그토록 분개하면서, 정작 지금 저질러지고 있는 온갖 부조리, 참사에는 어떤 행동을 취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저자는 지금은 ‘자기 중심적 도덕적 판단의 시대’라고 한다.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입장에 따라 진영을 나누어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태도가 만연해 있다.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윤리적이기 위해, 또는 조금이나마 더 ‘올바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윤리의 기준이 시대의 변화, 극적으로는 기술의 발전에 따라 선택권이 넓어지고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옳음과 그름’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영원불멸하게 고정되어 있다는 관점에서 풀려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현재 요구받은 것은 윤리적 판단 앞에 특정한 시대의 법률이나 종교적인 잣대,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관대함, 공감, 공손함, 겸손함, 연민, 진실함 등의 단어와 상대를 덜 비난하는 자세일 것이다. 한편으로 이 순간에도 넓게는 세계가 좁게는 나 자신이 윤리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의식없이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을 스스로 깨달을 때, 그리하여 현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바꾸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