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작가가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는 분인 줄은 몰랐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대학을 졸업할 무렵부터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면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행장을 꾸려 여행을 떠났다니 그는 나랑은 정반대의 삶을 살아온 터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여행 고수의 입장에서만 여행을 바라본 것은 아니라서 좋았다. 비록 일천한 경험이나마 내가 여행에서 겪었던 소소한 에피소드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고, 그 의미를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명성만큼 기지 넘치는 글들이 많이 있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여행에 관한 인류학적인 해석이었다. 기술의 발달로 구글 등 각종 웹사이트를 통해 유명 미술관을 실감 나게 들여다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에 대해 작가는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였는데, 그럴듯하면서도 재미있는 해석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사는 장소를 옮기는 것만으로는 줄기찬 여행의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가령 유목민들의 경우를 여행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부재다’라는 문장처럼 여행은 반복되는, 확고한 일상을 벗어나 불확실성을 향해 떠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불확실성 가운데서도 그 상황을 여행자의 계획에 따라 통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고 말한다.이쯤되니 잠들어있던 나의 여행DNA가 깨어난 것 같았다. 게다가 훌륭한 글솜씨와 재치, 인문학적 성찰까지 더해져 모처럼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