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무의 난처한 미술이야기에 심취하여 1권부터 읽어 벌써 7권째를 접하게 되었다. 7권은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로 르네상스 어원은 바사리(미켈란젤로 제자)가 “미술가의 열전(1550)”에서 표현한 부활을 1840년경 프랑스의 미슐레가 번역하는 과정에서 르네상스라는 용어가 유래하였다고 한다. 15세기에 십자군전쟁 피로감 등으로 종교에 대한 열정보다는 인간과 자연중심의 고대 그리스나 로마문화에 대한 관심 발생하며 그 시절로의 부흥과 재현 열망이 르네상스의 시작이고 피렌체에서 시작되었다. 르네상스미술은 중세미술와 비교하자면 중세미술 소재가 종교와 하느님, 원근법과 명암이 없는 감정을 표현, 인간적 모습은 표현하지 않았으며 재료는 수성으로 벽화는 프레스코가, 패널화에는 달걀 템페라를 사용한 반면 르네상스때에는 인간과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스·로마문화에 대한 연구 및 사실적 묘사, 인간중심의 그림이 나타나며 명암법, 투시법, 단축법 등의 기교 발생(현실감 표현방법 집중적으로 연구시기), 재료는 중세말기에 템페라기법에 유성제를 도입하면서 섬세한 묘사가 가능한 유화기법 탄생 (유화의 창시자 반 에이크)한 시기이다. 르네상스 미술은 조토로부터 싹트기 시작하였고 북유럽 르네상스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와는 다른 화풍으로 발달하였다.
르네상스 태동 원인은 1300년경 신성로마제국 영역이던 이탈리아 도시들이 경제적 성공으로 도시국가(코무네, 코뮌)로 독립하며 자치권 획득하고 축적된 부로 인해 르네상스 탄생하였다. 특히 독립국이던 베네치아와 교황의 로마를 제외한 대부분 도시가 소규모 도시국가로 독립하고 15세기에는 밀라노, 피렌체 등 대규모 도시국가 탄생하며 지중해 무역의 핵심인 후추가 맨고기를 먹던 유럽인들의 미각을 사로잡으며 부를 축적, 신흥계급 탄생(이들은 포폴로 그라소, 뚱뚱보라고 비하하는 말로 부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길드를 조성해 정치를 좌우하는 세력으로 성장하며 경제적 성공이 베네치아 산마르코 성당, 피사의 기적광장 & 사탑 등 건립 기반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지금도 최대의 문호라 말하는 단테가 실존인물을 근거로 교황도 지옥으로 보내는 등 지옥, 연옥, 천국을 다룬 고전인 “신곡”을 저술하였고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쉽다는 구절에서 보듯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연옥을 가기를 선호하며 교회중심의 미술에 투자하며 미술의 황금기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발상지라 하는 것은 피렌체는 고대 로마가 세운 도시로서 고대 로마역사를 보유하고 있고 브루니에 의하면 공화정이던 로마가 공화정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부활했다고 정치적으로 로마와 피렌체를 연결시키며 정당성 보유를 주장하며 시작하였다, 르네상스 발상지인 피렌체는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일명 두오모 성당이 유명하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 설계로 시작되어 돔 완성에 16년, 렌턴을 올리는데 10년 소요 되었고 조토 종탑 3층에 조각을, 특히 길드 모습도 묘사하였다. 돔 지붕은 공모로 브루렐레스키 공모작이 당선되어 착수되었으나 2만 5천톤의 돔 무게를 지탱하기위해 물고기 뼈모양의 헤링본 테크닉기법을 도입, 외부와 내부의 돔을 분리시킨 2중돔으로 무게를 분산하여 돔을 지탱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되었다. 르네상스 예술의 주요한 후원자는 메디치가문으로 문장안 동그라미는 약을 의미, 가문이름이 medicine(약)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의사나 약재상 예측되며 14세기부터 은행업으로 엄청난 부 축적하고 16세기 피렌체 대공지위에 오르며 문화귀족으로 변신 성공, 아비뇽시대에 3명 교황을 배출하였다. 특히 코지모 데 메디치는 르네상스의 숨은 설계자로 부르넬레스키, 도나텔로, 레오날도 다빈치 등 후원하였다. 그의 후원건물인 산 마르코 수도원은 사각형 뜰 회랑에 프라 안젤리코가 그림을 채워 넣었고 (성모희보),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한 도서관을 건설 (최초로 일반인 출입된 도서관)한 선구자 였다. 그의 후원에 대한 배려로 수도원안에 코지모의 방을 마련, 방안에 천시닫던 상인을 좋게 표현할 방법이 없자 예수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을 가지고 온 동방박사를 상인 으로 동일시하여 동방박사의 경배를 그려 넣어 동방박사와 자신을 동일시하였다. 이후 코지모 손자인 로렌초도 미켈란젤로를 후원하고 파라초 메디치(로렌초 집)에 도나텔로가 고대이후 최초 남성누드상 청동다비드상 제작(4.3미터)을 후원한 하였다. 이러한 후원과 문화적 배경에 많은 거장들과 작품이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