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출판된 솔라리스는 세차례에 걸쳐 영화화될 정도로 대중과 아티스트의 호감을 산 작품임에도 SF작품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
으로 외면아닌 외면의 장르소설을 왜? 손에 잡았는지 나 자신도 의아한 가운데 읽기 시작....
특히 작가에 대해서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인물인데...
폴란드가 낳은 SF 문학의 거장이자 소설가, 극작가, 미래학자, 문명학자, 과학 철학자, 문학평론가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작가라니...
작가는 작품의 특성과 주제에 따라 풍자와 익살, 그로테스크, 블랙 유머, 언어의 유희, 패러독스와 아이러니를 적재적소에 구사하고...외계의 낯선 생명체와의 조우로 맞닥뜨린 인간이 겪는 소통의 문제, 미지의 존재와의 갈등을 통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 그리고 기술의 진보에 따른 인류의 미래에 대한 탐구를 주제의 작품을 썼다는데..."인간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어두운 구석이나 미로, 막다른 골목, 깊은 우물, 그리고 굳게 닫힌 시커먼 문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 다른 문명과 접촉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까지 진출하고야 말았다."
SF는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작되나 보다.
자신의 존재도 제대로 모르면서 타인을 이해하고 이해했다는 오만으로부터....
우리가 타자를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상대에 대해 품고 있는 환상이나 환영을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는 현실이 아닌 꿈이나 그리움, 욕망속에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캘빈과 하레이의 기묘하고도 슬픈 연애담을 통해 내가 아닌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 일수도 있음을 우회적으로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닌지....(역자의 글에서)
글 속 주인공 캘빈은 심리학자이다.
정확히 알 수도 없는(어쩌면 영원히 모를) 인간 심리를 연구하는 캘빈과 끝없는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하는 연구자....
어쩌면 모두가 허상을 쫒는 것은 아닐까....주인공 캘빈은 솔라리스 스테이션에 도착하고...도착하자마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스테이션에 머물던 과학자중 한명인 기바리안은 사망한 상태...살아있는 과학자들은 최면 또는 환각 상태의 비정상적 상황...이러한 상황속에서 자살한 여인 하레이가 현실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하레이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고 자신이 진정 누구인가를 고민하며 괴로워하다가 자살 시도까지 하고....결국에는 소멸(?)하게 되고..여기에 더욱 놀라운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알 수 없는 존재의 진화가 이뤄지고...캘빈은 솔라리스학의 저서들을 훑어보면서 과학자들이 이 행성의 불가해한 현상을 해석하기 위해 들여온 온갖 실험과 탐구, 이론적 노력들이 결국은 하나의 진실, 즉 과학의 추상적인 업적-가장진보된 이론과 수학적 승리가 사실은 선사시대 인간이 소유했던 극히 초보적인 인간 중심의 우주에대한 이해에서 그다지 나아진 것이 없다는 의견으로 수렴할 뿐이라는 사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 현상의 불완전한 해석에 대한 작가의 깊은 회의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적 오류와 제약을 능가하는 거대하고 초월적인 공간으로서의 지적인 바다는 불완전함 자체가 그 본질적 특성의 일부인 그런 신적인 존재이자 태고적 사라진 신화의 재생이자 영적인 구원에 대한 소망으로 확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인간적 인지 수준으로는 불가해한 사물을 통해 존재론적 본질을 발견하고 싶어하는 보편적인 열망을 읽을 수 있다.
인간 인지 능력의 한계라는 주제를 과학적 상상력의 틀안에서 미학적, 철학적으로 풀어낸 작품.
바다의 존재가 제기하는 의문과 그를 설명하려는 학설, 수백가지 형태로 변화하는 바다의 모습과 그 표면이 푸른 태양과 붉은 태양의 빛을 받아 만화경처럼 빛나는 광경을 상상해 보는 것....이 모든 것이 SF가 주는 즐거움이 아닐런지
거기에 더해 인간의 관념 자체가 물질화되어 나타난다는 상황 설정, 발전된 과학기술의 물질적 토대 위에 제작된 복제인간....한 인간의 관념자체가 물질화된 복제인간의 설정과 의식의 제한된 테두리 안에 같혀 살 수 밖에 없으면서 그 테두리 너머의 것에 대한 열망을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편견이 배제된 자유로운 사색의 땅으로 인도하는 작가의 작품으로 우리는 소유와 동일시하는 이해의 지평을 넘어 타자와의 진정한 통섭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세상을 맞이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