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지나친 의욕 혹은 호기심에 집착한 나머지 잘못되거나 기대와 전혀 다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우리 몸을 지배하는 식욕에 대한 모든 것'이란 부제가 달린 <식욕의 과학(앤드루 젠킨슨 지음)>이란 책을 선택한 것도 이에 해당하는 사례입니다. 책 목록을 살피며 시선이 머무는 책의 소개글을 꼼꼼하게 읽어 본 후 선택했음에도 그런 결과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역시 '집착'이 문제였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이 주는 감흥이 매우 큰 탓이었습니다. 평소에 '요리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저는 최근에 <아인슈타인이 요리사에게 들려준 이야기(로버트 L 월크 지음)>를 다시 읽었고, <맛있는 요리에는 과학이 있다<아라후네 요시타카 외 8명 공저)>를 읽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두 책 모두 요리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흥미롭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평범한 음식 하나에도 수많은 과학적 이론과 지식, 현상이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매우 짜릿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평범하게만 여겼던 음식이 위대한 과학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음식이 단순히 먹는 것을 넘어 하나의 새로운 세상처럼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흥분을 일상 속에 품고 지내는 그 순간에 이 책과 만났습니다. 책을 통해 음식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지식에 접근하는 흥분을 더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은 욕심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앞서 두 권의 책이 음식 속에 숨어 있는 과학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 책은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심리적 기제와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이 책을 망설임없이 선택하게 만들었습니다.
며칠을 기다려 책이 저의 손에 주어졌습니다. 조급증이 밀려와 지체없이 포장을 듣고 첫 페이지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제가 기대했던 내용을 담은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책의 목차를 대충 훓어 보고 저자의 머리말을 만나는 순간 그만 탄식이 흘러 나왔지요. "비만은 정말 의지의 문제인가" 머리말의 제목이 이 책은 '비만'에 관한 것임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곤혹스러운 마음과 동시에 책에 대한 흥미가 나락으로 곤두박질 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난감하기 이를데 없었지요. 심지어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는 혼란이 엄습해 왔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치 늪지대를 지나듯 조심스럽게 저자의 머리말을 읽었습니다. "체중 조절에 관심이 있지만 다이어트에는 질린 모든 분들이 꼭 이 책을 읽어 보기를 희망한다. 비만과 우리 몸에 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 식욕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애를 쓰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친구나 가족을 둔 모든 사람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중략) 비만에 관한 인식이 바뀔 것이고, 그 변화는 미래 세대가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막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머리말의 마지막 대목에서 더 이상 의심의 여지없이 이 책은 제가 바라던 인간의 식욕에 관한 심리적 고찰과는 전혀 다른 방향을 지향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저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습니다. 읽을 것인가 말 것인가? 의무감이 전제되는 독서는 이미 독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에 읽어야 한다면 새로운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저자가 읽기를 권하는 사람들을 다시 살펴보다 마치 보물찾기 놀이에서 숨겨 놓은 보물을 찾은 듯 마음 한 곳으로 환한 햇살이 느껴졌습니다. "우리 몸에 관해 제대로 알고 싶은 사람"이 바로 그 햇살이었습니다. 덤으로 그동안 관심을 크게 두지 않았지만 비만에 관해 아는 것도 음식에 관심이 있는 저에게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고 오히려 꼭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독서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책은 비만 연구 전문가이자 외과 의사인 저자가 지난 20년간 3000여명의 환자와 상담하고 치료하며 품었던 의문에 대해 스스로 탐구한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수많은 지식과 경험이 잘못된 고정관념 혹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단지 많이 먹고 적게 운동한다고 비만에 이르는 것이 아니며 비만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지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인다고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또한 실증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1부, 에너지 수업 : 몸은 체중을 어떻게 조절할까, 2부, 무엇이 식욕을 유발할까 : 환경이 우리 몸을 만든다, 3부 현실적인 프로젝트 : 건강한 삶을 위해' 순으로 책은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 몸과 식욕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알고 이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접근해야 '비만'이란 괴물로 부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음을 명확하게 알게해 주는 책입니다. 다시말해 이 책은 비만에 관한 과학적 이론과 함께 비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에 대해서도 풍부하게 서술하고 있어 이론서이자 실용서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저 또한 비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체질량 지수(BMI)만 보아도 분명 비만 선상에 놓여있지만 50대 후반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이전과 다른 몸의 변화에 대해 염려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몸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고 개선하기 위해 무엇인가 실천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경각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2부에 수록되어 있는 '요리와 인간'편은 애초 제가 이 책에 기대했던 내용과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여 책을 읽지 않았다면 반드시 후회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안도감마저 들기도 했습니다. 인간은 음식을 떠나 생존할 수 없습니다. 건강하게 잘 먹는다는 것, 건강한 몸을 지니고 잘 산다는 것은 누구나 바라고 원하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거의 날마다 건강한 식생활을 꿈꾸며 많은 정보와 지식을 탐색하고 소비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지식과 정보가 과연 모두 올바른 방향을 가리키고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에 대해 이 책은 강한 의문과 함께 올바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독자로서 확신하며 후기 작성을 마무리 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