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0세에서 100세까지 100개의 장면으로 보는 인생의 맛에 대한 책이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하이케 팔러가 쓰고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 발레리오 비발디가 그린 인생그림책이다. 글이 많지 않고 그림 중심으로 되어 있어 자신만의 추억과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책이다.
글앞에는 0에서 99까지 숫자가 적혀 있는데 나이다. 0은 난생 처음 네가 웃었지. 널 보는 이도 마주 웃었고로 시작해서 99 살면서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로 마무리한다. 결혼후 새생명이 처음 태어난 날 참으로 신비로왔고 한편으로는 갓난 아이의 모습은 이렇구나라고 생각했다. 애들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나의 모습이 희미하게 지나치기도 했다.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 때마다 삶의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어느 순간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평범한 것 같다가도 예기치 못한 순간을 만나게 되는 것, 인생의 그런 흐름을 담았다. 그렇게 살아가는 날들 속에, 우리는 많은 것들을 맛보고 느끼며 배우게 될 것이다. 어릴 때는 학교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법을 배웠다면. 20대에는 사랑을, 30대에는 행복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그리고 40대에는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나이가 들어도 새로운 일은 계속된다. 마치 세상을 다 알 것 같은 나이에도, 새로운 세상을 발견할 수도 있고 어쩌면 생전 처음으로 나랑 딱 어울리는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여전히 무언가를 배우고 알게 된다는 것은 결국 살아간다는 말과 같은 말인 셈이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온 날들과 바로 지금, 그리고 살아갈 날들이 이어진다. 내 삶의 다음 장은 어떤 모습일까? 때로는 달고, 때로는 쓰며 가끔은 느끼지 못하고 지나쳤을 인생의 맛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책은 우리 보통사람의 소소한 인생을 담은 이야기 책이다. 이 그림책이 보여주는 인생은 결코 추상적이지도, 그렇다고 현학적이지도 않다. 구체적인 상황을 나열하며 이어지는 글은 마치 ‘인생이란 이런 거야’ 하고 알려주기 보다는 ‘인생은 그저 살아가는 거야’ 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모든 일이 힘들다가도, 또 모든 것이 가뿐해지기도 하는 날들의 반복.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이 책을 읽는 우리는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할 수도 있고 위로를 받을 수도, 어쩌면 용기를 얻게 될 지도 모른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글이 섬세한 감정을 통해 전체적인 흐름과 호흡을 잡아준다면 다채로운 색의 그림 또한 흥미롭다. 때로는 아주 단순하게, 때로는 화면을 가득 채우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그림은 이 책이 보여주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의 감각적인 그림들은 마치 전부 다른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레 흘러간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여성이기도 하다가, 때로는 남성이 되기도 하며 피부색과 체형도 가지각색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인생을 살아가는 누군가가 아니라, 인생 그 자체인 것이다. 그 인생은 나의 인생이었다가, 갑자기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인생이 될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무척 섬세하면서도 보편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관통한다.
삶은 모두에게 있지만, 모두에게 똑같지는 않다. 누구나 이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무엇을 배웠을까, 지금 내가 어디쯤을 살고 있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말이다. 그래서 같은 장면이지만 사람마다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책 속에서 나이마다 느끼는 것들이 다른 것처럼. 인생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사실들은 결코 수학 공식처럼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수많은 날들을 살아왔지만 그저 오늘을 살아가는 것뿐, 살면서 무엇을 배우기는 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을 수 있다. 어쩌면 이 책 속에도 이해할 수 없는 문장들이 많을지 모른다. 그래서 작가는 이 책을 삶의 경험이 많은 이들과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눠보며 인생 체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를 권한다. 아마 그 대화 속에서 우린 서로의 삶을 더욱 이해하게 될 것이다.
지금 내 나이때는 세상이 무심해 지고 달 한번 제대로 올려다보지 않게 되는 것인가? 60이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70이 되어도 자신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게 될까? 모든 일이 힘겨운 때가 있고 그러다 모든 일이 가뿐해지는 때도 있겠지. 앞으로 짤막하게나마 일기를 써봐야 겠다. 그러면 현재를 어제보다 훨씬 충실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