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작가가 두 해 전 펴낸 에세이. '나를 숨 쉬게 하는'이란 수식어를 부제로 지닌 <보통의 언어들>을 읽어보았다. 서너 번 읽은 책을 읽으며 책과 더 밀접해지는 감정이 들었다. 김이나 작가의 에세이는 일상 속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 한다.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봄이나 가을 바람결 같은 톤을 지닌' 글이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1. 주파수가 맞으려면 박자를 맞춰 가야.
2. 우리는 서로를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내가 오래오래 지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저 말이었던 것 같다. 실망시키는 데 두려움이 없기를 바란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만인에게 사랑받을 수는 없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인 소수와의 관계는 견고한 것이다.
3. 소중한 사람일수록 잘 바라보아야 한다. 세심히 살펴야 한다. 무언가를 제대로 보려면 최소한 한 발자국 정도는 떨어져 있어야 한다.
4.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다. 그리고 두 사람의 연애는 두 우주가 만나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 내는 또 다른 우주다. 당연히 완전히 다른 생태계의 법칙이 존재한다.
5. 혹시 당신이 예전의 나처럼 누군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당장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고 싶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반드시 정교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더라고, 그냥 당신에게 해악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냥 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있는 거라고
6. 이를테면 왁자지껄한 회식자리나 MT같은 곳에서 겉도는 이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조용히 다가가 앉는 풍경, 또는 발표를 망쳐서 붉어진 얼굴의 동료에게 가볍게 농담을 던지거나 기운을 북돋아주는 일.
시간으로 잴 수도 없는 찰나겠지만, 그 안에서는 거대한 두 개의 우주가 만난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충돌은 움츠러들었던 것의 몇 배만큼 서로를 자라나게 만든다.
7. 주는 자가 받는 이를 오랫동안 세심히 지켜봐온 시간이 선물 받는 이의 만족도를 좌지우지하듯, 조언도 그렇다. 듣는 이의 성향과 아픈 곳을 헤아려 가장 고운 말이 되어 나올 때야 '조언'이지. 뱉어야 시원한 말은 조언이 아니다.
8. 사람들은 저마다의 강점서랍이 있다.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그때 느낀 감정들은 어딘가에 저장이 된다.
9. 반드시 모든 이별이 가슴 아프고 나쁘고 슬프고 처연한 것일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으로 넘어가기 위한 산뜻한 걸음일 수 있거든요. 이게 토네이도 같은 거예요. 그 안에 있을 때는 여기서 나가는게 너무 무섭고 절대 못할 일인 것 같고 나한테 이 사람이 마지막일 것 같지만, 막상 그 토네이도에서 나오고 나면 또 그다음 토네이도가 싫어도 찾아오기 마련이거든요.
10. 어쩌면 '부끄럽다'라는 말은, 우리 마음 중에서도 가장 맨살에 닿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하나의 막이 드리워져 있어야 할 어딘가에 건드려졌다거나, 그 막이 확 걷혀졌을 때의 기분을 묘사하는 말이니까.
11. 묻다. 품다는 둘 다 침묵의 말들이다. 그리고 가슴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씨앗을 품고 알을 품는 동사로서의 의미는 언뜻 닮은 듯하지만 정서적으로는 꽤나 다른 역할을 한다.
가슴에 묻는다. 가슴에 품는다 모두 마음의 풍경이지만 묻고 가는 것은 주로 아픔이고 품고 가는 것은 연정의 속성을 띈다. 분명한 건 둘 다 차마 어쩌지 못해 내리게 되는 결정들이라는 거다. 우리는 가슴에 잊어야 하지만 도저히 그리 되지 않는 것들을 묻고, 키우고 싶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것들을 품는다.
12. 오늘 그 감정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감정이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해보면 단어의 속성이 더 와 닿는 경우가 많다. 어떤 감정은 아래에서 위로 나무처럼 자라고, 또 어떤 감정은 위에서 아래로 비처럼 내린다.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아래, 위로 다르게 탄생하는 감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느 날은 갑자기,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꺼내 읽으면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