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정리하는 뇌>이지만,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실은 제목과는 반대다. 뇌는 스스로 정리하지 않는다. 때문에 꼭 정리를 해줘야 한다. 그리고 뇌를 정리하는 방법은 본능적으로 깨우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므로 의식적으로, 훈련을 통해 터득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 뇌는 그 어느 때보다 바빠졌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양이 폭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클릭 하나, 스크롤 몇 번으로 누구나 손쉽게 정보와 선택지를 열람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에는 전문가들에게 맡기면 되었던 일들도 이제 각 개인이 직접 떠맡게 되었다. 가령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숙소를 예약하는 일도, 나에게 꼭 맞는 최적의 영양제 조합을 찾아내는 일도 모두 내가 할 일이 된 것이다. 결정할 일도 너무 많고, 결정을 위해 살펴볼 것도 너무 많다. 늘상 엄청난 양의 ‘결정하기’라는 과제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꼴이다. 우리 뇌는? 당연히 무척이나 어질러져 있을 수 밖에.
인생이란 끊임없는 의사결정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좀 더 결정을 잘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러니까, 더 쉽게, 더 퀄리티 높은 의사결정을 할 방법 말이다. 이 책은 ‘잘 정돈된 뇌’만이 제대로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즉,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뇌 정리가 필수인 셈이다.
정리술을 배우기에 앞서-
마인드부터 잡고 가자.
이 책에서 알려주는 정리 기술을 배우려면, 우선 몇 가지 마인드 셋팅이 필요하다.
1.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현대인의 뇌는 ‘과부하’ 상태다. 우리가 모든 대안을 검토하려 든다면 우리 뇌는 과부하 상태를 벗어날 수 없다. (누가 과연 아고다, 부킹닷컴, 트립닷컴, 호텔스컴바인, 에어비엔비의 모든 숙소와 모든 할인 옵션을 검토할 수 있단 말인가? 숙소 마다 달린 수십 수백개의 평가를 읽어보고, 조식은 포함되어 있는지, 카드 포인트는 얼마나 적용되는지, 내가 받을 수 있는 할인쿠폰은 또 없는지, 일주일 후에 예약하는 것이 더 저렴할지 아니면 지금 당장 해야할지, 아무리 잘 따져본다고 해도 시시각각으로 제공되는 새로운 혜택들과 여러 고려사항을 모두 살펴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뇌를 정리하려는 마음을 먹었거든, 그 출발은 ‘사람의 뇌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2. 스스로의 기준을 갖고 우선순위를 정한다.
다음 스텝은 완벽하게(또는 완벽에 가깝게나 최선을 다해서) 해내고 싶은 것들과 그 외의 것들을 구분하는 것이다. 제프 베조스는 언젠가 인터뷰를 통해 CEO의 역할이란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하루에 의사결정은 3개면 충분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좋은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결정할 것의 가짓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 사람들에게 볼펜과 펠트펜 중 어느 것으로 쓸 것인가 같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결정들을 연이어 내리게 했더니, 그 이후의 결정에서는 충동조절능력이 떨어지고, 판단력도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뇌는 하루에 특정 개수만큼의 판단만 내릴 수 있게 구성되어 있어서 그 한계에 도달하면 중요도에 상관없이 더 이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신경과학의 최근 발견 가운데 가장 유용한 것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우리 뇌에서 판단을 담당하는 신경 네트워크는 어느 판단이 더 우선적인지 따지지 않는다.”
어떤 결정이 더 중요한지 순서를 매겨보라고 하면 대부분 큰 어려움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뇌가 자동으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우리 뇌는 하루에 특정 개수만큼의 판단만 내릴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어떤 결정이 더 중요한지 스스로 따지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우선순위를 정리해두지 않으면 중요하지 않은 것에 에너지를 허투루 쓰게 될 수 밖에 없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최대한 중요한 결정에 신경을 집중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3. 중요하지 않은 사안들에는 ‘만족하기’를 실천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제 당신은 우리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으며,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처지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택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만족하기’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면 ‘이 정도면 됐다’싶은 만족스러운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점심 메뉴 고르기나 오늘 밤 넷플릭스에서 뭘 볼지 정할 때 이 ‘만족하기’ 전략은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넷플릭스에서 막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시간보다 콘텐츠 목록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왠지 더 긴 것 같은 기분은 아마 우리가 아직 ‘만족하기’를 배우지 못해서 일지 모른다.)
‘만족하기’는 인간이 생산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토대 중 하나다. 중요하지 않은 결정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을 때, 더 정확히 표현하면 개선해봤자 우리의 행복이나 만족을 별로 높여주지도 못할 것을 찾아내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을 때 ‘만족하기’를 사용한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버핏은 ‘만족하기’를 극단적으로 수용한 사람이다. 그는 60년째 같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그가 60년 동안 일군 부를 생각하면 이는 놀라운 일이다. (달리 오마하의 현인이 아니다.) 마크 주커버그의 옷장도 ‘만족하기’를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그의 옷장은 만족하기를 넘어 ‘자동화’까지 되어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아무런 인지적 부하 없이 그날 입을 옷을 결정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등급으로 치면 1등급을 넘어 초특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