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서
수호지는 중국의 4대 기서 중 하나입니다. 삼국지와 서유기를 이미 보았으니, 이제 4대 기서 중 3권을 읽게 되었네요.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문학이 주는 유희만을 얻기보다는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또 북송 말기의 시대가 어떠했는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완독 후 그 목적은 상당 부분 채워졌으나, 끝맺음이 주는 여운이 깊어서 생각에 잠겼습니다.
2. 영웅의 이야기
(1) 시대의 어둠
구한말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조선 후기가 끝나고, 근대로 넘어가는 그 혼란의 시기를 뜻하지요. 밀물과 썰물이 섞이며 일으키는 소용돌이처럼 말입니다. 북송 시대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시대는 혼란스러웠을 것이고, 사람들의 생존욕구는 서로 부딪히며 더욱 혼란을 가중시켰을 거예요. 그런데 이 시기에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끌 쓸 여유가 있던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단편적인 기록만이 후대로 이어졌을 것이고, 문화가 융성한 후대의 작가가 그 기록을 기초로 글을 써내려 갔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 글은 북송 말기를 시대로 배경으로 하나, 글은 명나라 시기에 쓰여쪘습니다. 시대의 어둠은 융성의 시대에 쓰여지는가 봅니다.
(2) 의리
한 여성 개그맨 때문에 '의리'라는 단어가 유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요즘에 '의리'라는 단어를 쓰면 구태의연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 단어가 유행한 것은 뜻이 주는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를 가벼운 추임새로 쓰면서 아이러니를 자아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는 '의리'에 관한 일화가 자주 등장합니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가 '형제'들의 '의리'로 이어집니다. 그말인즉슨 그 시대에 의리가 가장 필요했던 규범이었던 게 아닐까요. 형제들이 의기투합하는 에피소드마다 마음 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 그건 배신이라는 생각이었는데, 송강의 곁에 있는 누군가가 그를 배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가졌었던 거죠. 그것은 어쩌면 배신이라는 관념을 자주 보고, 들은 탓에 익숙해져버린 탓이 아닐는지. 21세기에도 여전히 의리는 필요한 듯합니다.
(3) 비극
도올 선생님께서 기독교의 여러 복음 판본을 비교하신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이후, 그 굴에 찾아갔을 때 시신이 없었다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판본이 있는가하면, 사후에도 성인들에게 여러 차례 모습을 비친 판본도 존재하지요. 도올께서는 전자의 문학성이 더 높다고 하셨습니다. 불확실하고 모호한 틈을 보여줌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상상하게 하고,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지요. 수호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송강의 죽음으로 마무리하며, 해피엔딩을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시대의 어둠이 계속될 것이라는 복선을 남김과 동시에 의리라는 감정의 가치를 드높힘으로써 교훈을 주지요. 또 송강을 따라 죽는 아우들의 존재로 송각의 죽음을 독자들에게 각인시킴으로써 그 교훈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3. 마치며
(1) 행동 규범
회사의 본점 이전 문제로 조직이 시끌벅적합니다. 또 조직 밖으로는 사회도 여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듯합니다. 어떤 행동거지가 올바른지 판단이 잘 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많은 날들을 살고 간 선조들이 남긴 고전에 그 답이 남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호지에서는 그 답을 '의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삶으로 보았습니다. 회사 생활에서 정의란 자기에게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행함으로써 일처리를 원활히 만드는 것이고, 호사 생활에서 의리란 동료들에게 친절히 대함과 동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 그 일을 나눠갖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게 나마 실천하면서 수호지의 교훈을 따라볼까 합니다.
(2) 포스트 수호지
이제 전공 그리고 업무와 관련된 책을 골라볼까 합니다. 주어진 업무를 충실히 다하려면 그만큼 지식이 필요한 거겠지요. 그래서 '금융' 구체적으로 '선박 금융'과 관련된 책을 선택했습니다. 매우 낯선 분야인데 언젠가는 맡아볼 수 있는 일이고, 또 공부하면 현재 업무를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식을 갖춰보고, 또 그 지식을 바탕으로 정의와 의리를 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