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선택의 동기 : 우리 부부도 나이가 50대 후반이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80대로서 이제 인생을 언젠가는 마감해야한다는 시기에 접어 들었다. 연로하신 분들과 앞으로 남은 기간을 후회없이 잘 보내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한 이해와 그 곳에 이르는 과정에 거쳐야하는 단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 : 인도계 미국인인 저자는 그의 부친의 죽음의 과정과 더불어 다른 이웃들의 죽음의 과정을 조사하고 그 분석한 점들을 서술하면서 책을 읽는 우리들에게 여러 시사점을 던져 놓은 것 같다. 다음은 내가 인상 깊게 읽은 책의 구절 들이다.
- 사실 우리는 노인들이나 불치병을 앓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의학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자주 실망시키는지 알 수 있다. 아주 조금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뇌를 둔화시키고 두뇌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치료를 받으며 점점 저물어 가는 삶의 마지막 나날들을 모두 써 버리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환자들이 요양원이나 중환자실 같이 고립되고 격리된 곳에서 치료를 받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했던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채 엄격히 통제되고 몰개성화된 일상을 견뎌 내면서 말이다. 늙어가다가 죽음에 이르는 경험을 정직하게 살펴보기를 꺼려하는 경향 때문에 우리는 환자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더 많아졌고, 환자들은 그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본적인 위로와 안식을 거부 당해 왔다. 우리는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까지 성공적으로 산다는 게 어떤 것인지 일관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의학, 기술, 그리고 낯선 사람들의 손에 우리 운명을 맡기는 것이다.
- 질병과 노화의 공포는 단지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상상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그것은 고립과 소외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부터는 그다지 많은 것을 원하지 않는다. 돈을 더 바라지도 권력을 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가능한 한 이 세상에서 자기만의 삶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대해 직접 선택을 하고 자신의 우선 순위에 따라 다른 사람이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쇠약해지고 의존적이 되면 그러한 자율성을 갖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내가 두 할아버지, 루스 할머니, 앤 할머니, 리타 할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운 것은 그것이 분명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 새라는 의식이 오락가락했고 의료진에게는 한가지 선택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새라는 투지가 있는 사람 아니었던가? 그런 사람들이 갈 다음 단계는 중환자실이었다. 중환자실을 앞에 둔 선택의 순간에 인간적 존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나는 이제 우리도 어려운 대화를 나눌 때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지마비가 진행되면서 머지않아 아버지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앗아 가려 하고 있었다. 사지마비가 오면 24시간 간호, 산소 흡입기, 영양 공급관이 필요해질 것이다. 아버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다고 내가 말했다. "절대 안 되지. 그냥 죽는게 낫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그날 나는 내 평생 가장 어려운 질문들을 아버지에게 던졌다. 커다란 두려움을 안고 하나하나 물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분노. 혹은 우울. 아니면 그런 질문을 함으로써 뭔가 그분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 아닐까하는 두려움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안도감이 들었고 뭔가 명확해졌다는 걸 느꼈다.
- "무슨 생각하세요" 내가 물었다. "죽기까지의 과정을 늘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생각 중이다. 이거 이 음식이 그걸 길어지게 만들고 있어." 어머니는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당신을 돌보는게 좋아요. 램 당신을 사랑하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힘드시죠? 그렇죠?" 여동생이 말했다. " 응, 힘들다." "쭉 잘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으세요?" 내가 물었다. "그래." "깨어있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앞에 있다는 걸 느끼고 이렇게 우리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가 물었다. 아버지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우리는 기다렸다.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아."
느낀 점 : 우리나라에도 사정이 허락된다면 미국과 같이 독립적인 생활공간이 보장되는 요양원들이 많이 생기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9988234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