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메론> 이 책의 이름은 세계사나 고전 문학에 조금이나마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말할 수 있지만 읽어보았다는 사람이 드물다는 책이다. 심지어 서점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즐기는 나의 경우에도 책장에서 해당 책을 본 기억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현대인에게 큰 인기가 있던 건 아니었던 거 같다. 나 역시 이 책의 제목이나 역사적, 문학적 의의에 대해서는 서양문학사 교양과목이나 세계사 시간에 흑사병과 관련하여 익히 들었지만 감히 읽어볼 시도를 못할 차에 최근에 한 권 짜리 합본으로 번역된 신권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신청하게 되었다.
처음 이 책을 받고 놀랄 수 밖에 없었건 것은 내 생각보다 너무 두꺼운 책 두께와 르네상스 시대의 210여 장의 풍성한 그림 자료였다.
'데카메론'은 '데카'는 '10', '메론'은 '이야기'란 뜻으로 '10일간의 이야기'라고도 번역되며, 흑사병을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피신한 10명의 남녀의 10일 동안의 100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348년 7명의 귀족 여인들과 3명의 젊은 남자들이 성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 피신해 와 진짜 하루의 10편씩 10일동안 단편적인 이야기를 잡담처럼 나누는 내용이지만 그 속에는 당시 중세사회의 뒷얘기를 고스란히 담은 거 같은 신랄한 표현들이 있다. 이 이야기 속 인물들은 당시 모든 계층의 평범한 사람들로 중세 시대의 상류층인 왕, 기사, 성직자, 영주와 같은 다양한 사람들이 벌이는 다채로운 내용을 보이고 있다. 가장 주가 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내용인 '사랑'과 '욕망'으로 교황인지 하류층인지 상관없이 기본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인간이라는 전제하에 어떠한 편견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이고, 이런 일들이 실제 중세시대라는 역사상 가장 종교적으로 폐쇄적이고 암울한 시기에 일어났을까 의문이 들게 하는 내용들이어서 이 책이 나온 당시에는 어떤 반응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게 한다. 가장 고귀하다 여겨지는 왕족이나 성직자들의 타락과 부패에 대한 모순을 많이 담고 있으며, 섹스에 대한 노골적인 표현으로 인한 자유로움과 이런 풍자들로 인한 서민들이 느끼는 감정에 대한 내용이 많아서 당시에 흑사병이라는 최대의 펜데믹을 겪고 있던 사람들이 어떤 불만들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것이 다음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인본주의의 근간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첫째 날과 아홉째 날의 주제는 자유이고, 둘째 날에는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고나서 행복한 끝을 맺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 셋째 날엔 갈망하던 것을 획득하는 삶에 관해서, 넷째 날엔 불행한 결말을 짓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다섯째 날엔 결실을 맺는 사람들의 이야기, 여섯째 날에는 재치를 이용하여 교묘한 응답을 하면서 위기를 벗어난 사람들의 이야기, 일곱째 날과 여덟째 날의 주제는 부부간이나 남녀 간에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 마지막 날에는 고상하고 관대한 주제나 영혼의 위대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에도 상당히 외설적이고 비도덕적이라 비난할 수 있는 상황들이 많은데 굉장히 철저히 인본주의 관점에서 그동안 밖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금기시한 내용들이라 이 작품이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것으로는 얼마나 파격적이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런 상상력을 극대화 시키는 것은 무엇보다 여기에 삽입된 많은 중세시대 필사본과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 작품들이다. <데카메론>의 내용을 소재로 한 작품들은 하나같이 각 작품의 가장 중요한 한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고 특히나 모든 것은 인간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약간 무미건조한 중세시대 판화에서 생생한 인간의 신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르네상스 예술의 아름다움까지 단순히 책 내용에만 집중하다 보면 자칫 지루해 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이런 명화 작품들은 마치 이야기 속에 내가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은 효과를 가지게 한다. 이 책은 풍부한 삽화와 잘 정돈된 이야기, 의외성이 가득한 시대적 배경과 상상력으로 이루어져 있어 천일야화처럼 하루에 한 편 씩 읽기에 좋은 구성으로 되어있으며, 역사와 인간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에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