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알게 된 계기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봉준호 감독의 헐리우드 차기작의 원작소설이라는 기사를 우연히 접한 것이 시작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그 전에 <괴물>이나 <옥자>,<설국열차>와 같은 한국에서 그동안 시도되지 않았던 장르를 많이 다루기는 했는데 SF, 그것도 우주 공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나의 호기심을 끌어 오랫만에 이런 SF 작품을 접해보게 되었다. 사실 로버트 패터슨이 이미 극중 미키로 주연이 확정된 상태라 하여 모든 상황이 그의 모습이 대입되어 그려졌고 생각보다 잘 어울릴 만한 배역이라 생각되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도무지 그동안 보아왔던 봉준호 감독 스타일의 영화로 어떻게 나올 것인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존재'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철학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있고, 여기서 화자로 말하는 기존의 미키7이 진짜 미키라 할 수 있는 것인지 미키8은 분명 다른 존재인데 한편으로는 왜 다른 존재라고 볼 수 없는지 계속 의심하고 진짜 존재하는 것의 어떤 기준을 찾으려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걸 영화로 만들면 자칫 너무 잔잔하고 지루해지지는 않을런지 한편으로는 좀 걱정이되긴하다. 왜냐면 몇몇 장면 말고는 큰 액션이나 스펙타클한 장면이 떠오르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영화 연출자들의 몫이니 나는 이 작품의 상상력과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복제인간과 약간은 다른 의미이지만 비슷하게 생각되는 나와 동일한 존재란 대체 어디까지가 기준이고, 복제인간은 또 다른 나라고 볼 수 있느냐의 모순적이고 애매한 상황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능력이나 운도 없는 평범한 한 인간인 미키 반즈라는 주인공이 현실도피처로 삼은 익스펜더블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마주하는 인간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내용이다. 우주 식민지 개척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위해 겪을 수 있는 모든 위험한 일을 목숨걸고 해야하는 이 직무는 임무 중 죽으면 모든 세포 하나까지 재생하여 다시 태어나게 되지만 단순한 복제인간과는 다르게 그 전까지 기억을 모두 가지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연속성에서 동일인물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기억 데이터를 백업하는 과정에도 공백이 있게 마련이고 우연한 사고로 인해 동시에 7번째 미키가 살아있는 상황에 동일한 유전자와 기억을 가진 8번째 미키가 만들어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사람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 애초부터 여러 번 기억의 백업과 신체의 재생으로 만들어진 미키는 존재하지만 진짜 인간이라 볼 수 있는 존재인가, 둘 다 존재하지만 기억의 공백과 시간차로 인한 경험이 일부 다른데 두 사람은 같은 미키인가, 이렇게 두 명의 미키가 존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규정적으로나 옳지 않은 일이라면 과연 둘 중 누가 사라져야 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지만 이 단순한 상황만으로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내용은 사실 정답은 없지만 개개인이 이런 경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어디에서나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령관인 마셜은 두 명의 익스펜더블이 존재하는 것은 재화의 낭비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이는 곧 미키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미키가 인간이냐 아니냐를 결정해도 여기에 나오는 친구 베르토의 입장이라던가, 자살하려던 미키7을 만류하는 8이라던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하려 했던 여자친구 나샤의 마음이라던가 각자가 미키라는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움이 있었다.
사실 SF장르여서 우리가 기대하는 스펙타클함 보다 인간의 존재와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와 상황이 흥미로웠고 이것을 우주를 배경으로 하지만 우주선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봉준호 감독의 스타일대로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지 궁금하게 한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주인공의 입장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것도 매력적이고 로버트 패터슨에 대입하여 상상하는 것도 꽤 재미있는 지점이어서 인간 자체에 대한 철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라면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