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은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에 동시대에 다양한 기준과 가치관이 존재한다. 예의에 있어서도 그것은 다르지 않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예의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철저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 사람이 밀집해 사는 도시는 집, 일자리, 주차공간, 공원의 조용하고 구석진 자를 두고 많은 이들이 다투는 정글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때 모두가 팔꿈치로 서로를 찌겅댄다면 친절하고 참을성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 아름다운 유토피아는 빠르게 붕괴되고 만다. 결국 우리는 서로 적이 되어 고통의 늪에 빠지고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ㅇ맇은 채 성공적인 삶과는 멀어진다. 버릇없고 예의 없는 행동은 우리가 목표에 도달하는 걸 막는 방해물이다. 심지어 예의 없는 행동은 스스로를 해치는 행동인 지도 모른다. 예의 없는 사람이 되려면 이기심과 부정적인 생각, 혐오로 스스로를 가득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예의는 우리의 일상을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제로 아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의 공중도덕이 시대정신에 알맞게 수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많은 공중도덕이 빠르게 변했고 완전히 새로운 행동양식도 생겨났다. 다행히 이제 우리는 성차별, 인종차별을 비롯해 모든 다양한 종류의 차별에 주목하고 있다. 인종차별은 차별을 당한 당사자나 그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널리 논의되는 문제이다. 시대가 급격하게 변하면서 예의의 범주와 상황들이 많이 변했다. 예전 시대에 많이 허용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사회적인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급격하게 변화된 시대에서 너무 많은 것들이 예의의 범주로 들어오면서 혼란을 겪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아름다운 동시에 유약하다. 20년 전에 비해 세상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무력충돌도, 범죄 피해자가 되는 사람도 훨씬 적다. 이제 우리 사회는 어린아이나 동물을 때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약자의 권리를 인정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지 않고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이 되었다. 오늘날만큼 소수자들이 존중받는 시대도 없었다.
우리의 일상으로 범위를 좁혀보면, 이전에 통용되던 많은 것들이 낡아버렸고 여태까지 눈감고 넘어가던 많은 것들이 의문시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수십년간 이어진 과잉소비와 전 세계적인 기후변화로 인해 오늘날 소비 문화와 선물 문화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SNS로 연락하기를 선호하면서 과거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오해가 쌓이기도 한다. 혐오발언과 가짜뉴스가 난무하는 요즘은 공개적인 메시지를 볼때 다시한번 고민하고 용기있게 반박하는 행동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모든 것이 변하는 지금 우리는 어느쪽을 향해야 할까. 어떤 것이 예의이고 어떤 것이 무례인가. 오래전에는 특권층, 귀족 계층 사람들이 행동과 예의범절의 모범이었고, 그들의 행동양식과 말투가 기준이었다. 그런데 특권층이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잃으면서 모범과 기준도 무너졌다. 오늘날 우리는 아이들을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으로 키운다. 아이들은 유치원 생일때부터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초등학교에 가면 친구를 따돌리는 법을 배운다.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리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제 우선순위가 아니가. 사람과 사람이 처음 상호작용을 할 때 중요한 '좋은 관계 맺는 법'은 그 가치를 잃었다.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를 둔 아이들은 오늘날 포크를 올바르게 쥐는 법은 몰라도 학급 전체에서 유행하는 의류 브랜드는 민감하게 포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순응하는데 성공하지 못해서 위장으로 겨우 가리고 있던 자신의 우너래 모습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며 살거나 집단에서 튕겨져 나간다. 자신이 인식하는 것과 타인이 인식하는 것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순간이 때로는 사회적, 경제적 성공보다 행복하다. 그러므로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할 때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 이입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별 쓸모도 없는 균형 잡힌 삶을 사는 법 따위로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보다는 자신만의 장점과 원칙에 집중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더 깊이 고려하고 배려할수 있을지 생각하는 사람은 벌써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